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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신고 후 1시간 20분… 아이들은 기둥만 부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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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신고 후 1시간 20분… 아이들은 기둥만 부여잡고 있었다

입력
2014.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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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직전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것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10시 11분 사진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배가 좌현으로 90도 이상 기울어진 이 시간에도 선실 기둥만 붙잡고 대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원고 학생의 첫 119 신고 뒤 약 1시간 20분이 지났고 해경이 출동한 지도 40분이 지나 배 밖에서 구조가 한창이었던 시점이다.

29일 세월호 사고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단원고 2학년 4반 고(故) 박수현(16)군의 휴대폰 속 동영상과 사진에는 미처 선실에서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의 처연했던 마지막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박군은 세월호가 좌현으로 30도 정도 기운 사고 당일 오전 8시 52분 57초부터 오전 9시 9분 23초까지 휴대폰으로 선실 안을 촬영했다. 이때만 해도 학생들은 “신난다”고 할 정도로 아직 위급한 상황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스스로 구명조끼를 찾아 입기 시작했고 침몰을 걱정했지만 반복되는 대기 안내 방송을 충실히 따랐다.

jtbc에 공개된 단원고 고 박예슬양의 동영상에서도 오전 9시 37~41분 90도 가까이 기운 복도에서 대기하던 학생들이 해경의 구조 헬기를 보고 “헬리콥터가 와”라며 반갑게 소리쳤다. 구조될 것으로만 믿은 학생들은 “엄마 보고 싶어”라며 울먹이는 친구에게 “살 건데 무슨 소리야”라고 밝게 대답했다. 오전 9시 38분 “구명동의에 매어진 끈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와 바다로 뛰어내린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이동하라는 지시는 없었다. “구조 좀”이라는 외침을 끝으로 박양의 동영상은 끝났다.

최초 신고 후 1시간 19분이나 흐른 오전 10시 11분 촬영된 박군의 사진 속에서도 학생들은 같은 자리에서 기둥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선실 내 침대는 90도가 기울었고 이를 붙잡고 힘겹게 서 있는 학생의 얼굴에는 웃음기 대신 공포가 가득했다. 이 시간 세월호는 이미 좌현이 바다에 잠겨 배에서 탈출이 어려웠다.

박군과 친구들이 머문 곳은 4층 선수쪽 우현 선실이었다. 박군과 친구들은 이미 30분 전 선원들이 탈출한 사실도, 어업지도선과 어선들이 바다에 뛰어 내린 승객들을 구조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박군은 마지막 사진 촬영 후 약 3분이 지난 오전 10시 14분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이뤄지기 전 끊어졌다. 몇 분 뒤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어지며 300여 명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박군의 시신은 지난 22일 오후 선실에서 발견돼 유족에게 인도됐다. 함께 전달된 유류품 속 휴대폰에 사진들과 동영상이 저장돼 있었다. 세월호의 침몰 시점과 원인 등을 밝히는데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군의 한 친척은 “평소 차분하고 남을 배려하던 아이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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