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하도 소식이 없어서요. 암만해도 내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여기 영정 앞에 차려진 음식도 내가 직접 다시 차렸어요.”
29일 오전 안산제일장례식장 3층. 시신 없는 빈소가 차려진 지 꼭 일주일째다. 조문객도 없는 이 곳에서 박모(44)씨는 “우리 아들…”을 부르면서 섧게 울었다. 화장기 없는 그의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과일이 시들었네. 한번 더 바꿀까…” 박씨는 “아들이 먹는 걸 엄청 좋아해서 신경 쓰인다”며 “이따 내가 다시 한번 차려야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의 아들 단원고 2학년 이모(17)군의 시신은 지난 20일 가족들이 육안으로 확인했고, 다음날 이곳에 빈소가 차려졌다. 하지만 아들이라고 믿었던 시신은 DNA 검사 결과 이군과 같은 반 심모군인 것으로 확인됐다. 형의 것을 물려받은 검은 가죽 지갑과 이름표, 휴대폰, 검은색 브랜드 점퍼, 수학여행 가기 2주 전 사준 운동화 등은 모두 이군의 것이었지만 DNA는 달랐다. 하마터면 뒤바뀐 시신으로 아들의 장례를 치를 뻔했다. 이후 박씨는 아들의 영정사진과 위패만 부여잡고 텅 빈 빈소를 지켰다.
“일주일 동안 아이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유실됐을 수도 있고… 그러면 여기 유품으로라도 장례를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하느라 (빈소를) 치울 수 없었어요.” 박씨는 유품함을 하루에 한 번씩 닦으면서 아들이 없는 빈소에서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얼굴을 쏙 빼닮아 쌍둥이라고 오해 받던 연년생 이군의 형은 말없이 동생이 좋아하던 치킨을 사와 위패 앞에 뒀다. 이군의 형은 심장이 너무 뛰어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불을 못 끄게 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28일 오후 11시쯤 해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눈꼬리와 쇄골 밑의 점, 빨간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검은 반팔 티…. 아들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진도에 있던 아버지가 시신의 속옷까지 확인하고도, 혹시 또 몰라 DNA 확인 결과를 기다렸다. 박씨는 29일 오전 10시 이군의 시신이 맞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의 죽음을 확인한 박씨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정말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도 들었거든요.” 하지만 이내 박씨는 “애 몸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막상 또 찾았다고 하니까 간사하게 ‘우리 애가 맞나,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이 얼굴 보고 나서 입겠다”며 상복으로 갈아입기를 주저했다.
일주일 동안 빈소를 지키면서 정부측의 일 처리에 서운한 점도 많았다. 박씨는 “우리 애가 여기 태어나서 살았던 게 억울하고 서운했다”면서도 “이제 와서 얘기해봤자 여러 사람한테 피해갈까봐…”라며 말을 아꼈다. 또 “전부 다른 반이지만 모든 가족들이 등 두드려주는 말로 서로 다독이고 있다”며 “아이를 못 찾은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 안 되게 쓰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로 떠나기 전날 밤 함께 짐을 싸던 게 아들과 함께한 박씨의 마지막 기억이다. “수학여행 간다고 좋아서 옷 입어보고…, 한라산에 간다길래 물집 잡히니까 두꺼운 양말을 가져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 난 발바닥이 두꺼워서 괜찮아’ 했던 게 기억나요. 애가 발도 크고 볼이 넓어서 축구화도 자주 바꿔줘야 했거든요.” 박씨의 얼굴에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안산=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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