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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축제 위해 망가질 '500년 원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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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축제 위해 망가질 '500년 원시림'

입력
2014.04.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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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활강 슬로프 예정지역에 버티고 선 아름드리 황철나무. 주위에 왕사스레나무 들메나무 사시나무 등과 어우러져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1. 남자활강 슬로프 예정지역에 버티고 선 아름드리 황철나무. 주위에 왕사스레나무 들메나무 사시나무 등과 어우러져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2 여자활강 슬로프 예정지에 위치한 주목. 썩고 있는 죽은 나무기둥을 거름 삼아 싹을 틔운 어린 묘목이 자라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2 여자활강 슬로프 예정지에 위치한 주목. 썩고 있는 죽은 나무기둥을 거름 삼아 싹을 틔운 어린 묘목이 자라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4 남자활강코스 곳곳에 이미 굵직한 나무들이 베어져 있다. 푹신한 낙엽층은 공사가 끝나면 단단한 슬로프로 변한다. /2014-04-29(한국일보)
4 남자활강코스 곳곳에 이미 굵직한 나무들이 베어져 있다. 푹신한 낙엽층은 공사가 끝나면 단단한 슬로프로 변한다. /2014-04-29(한국일보)
5 해발 545m 숙암리 마을 뒤편에 활강경기 골인지점이 표시돼 있다. /2014-04-29(한국일보)
5 해발 545m 숙암리 마을 뒤편에 활강경기 골인지점이 표시돼 있다. /2014-04-29(한국일보)
6 소나무에 '이식대상수목' 표시가 붙어 있다. 소나무 외 이식대상은 대부분 직경 15cm 이하 작은 나무들이다. /2014-04-29(한국일보)
6 소나무에 '이식대상수목' 표시가 붙어 있다. 소나무 외 이식대상은 대부분 직경 15cm 이하 작은 나무들이다. /2014-04-29(한국일보)
3 여자활강 출발점으로 예상되는 중봉과 하봉 사이 능선은 야생화 천국이다. 한 탐방객이 나무에 기대 쉬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3 여자활강 출발점으로 예상되는 중봉과 하봉 사이 능선은 야생화 천국이다. 한 탐방객이 나무에 기대 쉬고 있다. /2014-04-29(한국일보)

두 달의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얼레지 현호색 바람꽃 노루귀 등 이른 봄꽃들이 알록달록 초록 덮개를 수놓았다. 중봉과 하봉 사이 해발 1400m 가리왕산 능선엔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땅에 흔한 나무지만 이곳 신갈나무는 좀 다르다. 굵은 전봇대마냥 늘씬하다. 겨울 때를 벗지 못한 1000m이상 산기슭에는 분비나무가 곳곳에 짙은 녹색 점을 뿌려 놓았다. 그 사이로 히뜩히뜩 비치는 나무는 왕사스레나무. 사스레나무와 거제수의 교잡종으로 한국 특산종이다. 점봉산에도 있지만 가리왕산에 넓게 분포한다. 들메나무와 개벚지나무도 남한 최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선 주목의 성장 과정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죽어 천년’의 등걸에 씨앗이 발아해 ‘살아 천년’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이병천 대표는 가리왕산 원시림을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숲에 비유했다. 모든 생명이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돼 어느 한 곳이 망가지면 다른 곳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지금 가리왕산이 그런 위기에 처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용평스키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표고차가 800m이상이어야 한다는 국제스키연맹의 규정에 못 미친다. 다른 대안들도 근접성에서 밀렸다.

공사 준비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작년 6월 산림청은 스키장 건설 예정지역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해제했다. 지난 3월엔 중앙산지관리위원회가 산지전용을 허가했다. 청와대에서 규제완화 끝장토론이 열린 후 1주일 만이다. 이달 17일 강원도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법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강원도는 환경단체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는 입장이다. 우선 슬로프상에 있는 1,631그루의 나무를 이식한다. 환경영향평가서에는 58,616주의 나무가 훼손될 것으로 파악됐다. 대회가 끝나면 자연천이 방식으로 복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마디로 자연의 힘에 맡기는 것이다. 환경단체는 불가능하다고 맞선다. 가리왕산은 너덜바위 지대로 스키장 건설 과정에서 토양의 화학적 물리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보름 축제를 위해 500년 원시림을 훼손할 순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500년의 근거는 마항치에 설치된 산삼 채취를 금하는 강릉부산삼봉표(江陵府山蔘封標)다. 조선 세종 때부터 국가가 가리왕산을 관리해왔다는 추론이다. 이보다는 일제의 수탈로 훼손된 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60~70년이 걸렸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자연천이 복구가 성공하더라도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올림픽은 15일간 열리고 활강경기는 단 3일간 치러진다.

“선진국은 자연자원을 잘 보존해 다음세대에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가 국가적인 의제가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아직도 자연을 너무 함부로 다룬다”이병천 대표의 탄식이다. 가리왕산도 결국 경제 논리를 앞세운 국가적 사업이라는 이유로 자연에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의 희생양이 될 것인가? 듬직하게 중봉 능선을 지켜온 아름드리 음나무는 끝내 잔인한 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공사착공은 다음달 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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