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남자가 있다. 남자는 신문이나 뉴스가 제공하는 사망 정보를 좇아 방방곡곡 사람이 죽은 장소를 찾아다닌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고인에 대해 묻고 자신만의 예를 갖춰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전해들은 고인의 간략한 삶을 노트에 기록한 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읽으며 마음속에 새긴다. 아깝게 세상을 뜬 선량한 시민이건 죽어도 싸다고 욕을 먹은 파렴치한이건 차별하지 않는다. 살인을 당했건 단순사고였건 가리지 않는다. 남자는 때로 수상쩍은 또라이 취급을 당한다. 그 새끼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데 슬퍼하려는 거야. 때로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니까짓게 뭔데 알지도 못하면서 애도를 해. 남자는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분노와 원한에 깊이 동참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자가 한때 이 세계에 살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분노는 사건을 기억하게 하되 사람은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열의 정념이 오히려 애도의 여정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의 한계를 안다. 피붙이나 죽마고우처럼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 할 수는 없다는 걸. 그저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걸. 남자의 이름은 사카쓰키 시즈토.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일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분노의 정념이 끓고 있는 이즈음, 이 남자의 차분하고 질긴 애도법이 한층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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