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목포해경 123정(100톤급)은 세월호와 교신하지 못했고 세월호-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간 교신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123정 정장 김경일 경위는 28일 오전 11시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항에서 당시 구조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출동 당시 상황은.
“경비구역 순찰 중 오전 8시 58분쯤 상황실로부터 신고가 접수했다. 승객 400~500명이라고 했고 선체가 40~50도 기울었다고 했다. 사고 해역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다.”
-가는 동안 세월호와 교신했나.
“못 했다. 오전 9시부터 1분간 교신을 했는데 신호가 안 와 사고 해역 주위 인근 어선들을 총동원하려 했다. 123정 도착 뒤 10~20분 사이에 어선 30~40여척이 도착해 (구조 작업을) 많이 도왔다.”
-세월호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간 교신은 들었나.
“듣지 못 했다.”
-선체 진입은 했나.
“못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세월호가 40~50도 기울어져 있어 계류를 하면 123정 선체가 세월호로 빨려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다. 바다에 뛰어든 승객 구조 위주로 했다.”
-경비정으로 대공방송만 했다. 적극적으로 선내 방송을 해야 하지 않았나.
“도착과 동시에 구명용 단정을 내리고 5분간 직접 ‘승객 여러분, 전원 바다에 뛰어내려 주십시오. 전원 퇴선하십시오’라고 경고방송을 했다(그러나 이날 123정의 경고방송을 직접 들어본 결과 경비정 우현에서 1m 떨어져 있던 취재진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 선체에 진입해 선내 방송을 하진 못했다. (세월호에 올라 구명정 1대를 풀었던) 이형래 경사에게 될 수 있으면 조타실로 올라가서 하라고 했는데 각도가 심해 올라가지 못했다.”
-구조 상황은.
“‘퇴선하라’는 방송을 하고 3~4분 뒤 좌현 선미쪽에 사람들(기관부 승무원)이 보여 단정이 최초로 가서 구했다. 경비정과 가까운 조타실 밑 객실 쪽에서도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여 부주목으로 객실 유리창을 부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보조망치와 도끼로 3차례 강타해 부순 뒤 7명을 구했다. (두께 2㎝의 깨진 유리 조각을 보이며) 파편이 튀어 해경이 다쳤다. 승객을 구하고 나서 3분 뒤 여객선은 침몰했다.”
-선장 등 승무원들을 먼저 구했다. 신분을 몰랐나.
“전혀 몰랐다. 긴박했기에 한 사람이라도 빨리 구조하려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제복을 입고 있더라도 승객인지 승무원인지 몰랐다. 구분할 겨를이 없었고, 일단 다 구하려고 했다.”
-123정에서 찍은 동영상에는 방송 소리가 안 들린다. 편집한 것인가.
“대부분 짤막하게 찍혀서 그렇다. 영상은 편집 없는 그대로다.”
-아쉬운 점은.
“상황이 긴박했지만 승조원 14명으로 승객 500여명을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생각보다 여객선 침몰이 훨씬 빨랐던 탓에 많은 승객들을 못 구했다. 다른 함정들이 있었으면 아마 더 많은 인명을 구조했을 것이다.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