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당의 분당서울대병원 1층에는 ‘게임방’이 있다. 하지만 PC방이 아니라 엄연한 치료실이다. ‘가상현실치료실’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게임기 XBOX를 활용해 뇌줄중 환자의 재활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 병원 백남종 재활의학과 교수팀은 2년 전부터 서울대 공대 방현우 교수팀과 함께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MS의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로 XBOX의 동작 인식 센서 ‘키넥트’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SW)를 가지고 뇌졸중 환자의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백 교수는 “뇌줄중 재활치료는 같은 동작을 수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힘겨워 한다”며 “게임기를 활용하면 즐기면서 할 수 있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접속해 작은 물체를 집어서 옮기거나 여러 종류 물체 중 하나를 고르는 등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면 재활치료사 없이도 키넥트가 이 동작을 인식하고 정확도를 채점해 그 결과를 알려준다. 백 교수는 “그 동안은 환자들이 재활치료 때마다 보호자와 병원에 와야 했지만 이젠 프로그램 접속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나 치료가 가능하다”며 “비싼 장비 없이도 저렴한 비용으로 재활치료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 상반기 중 임상결과를 논문을 통해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MS 관계자는 “본사에서도 홈페이지에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키넥트를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XBOX의 경우처럼 최근 첨단 IT기기와 관련 SW가 의학적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환자 치료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에서는 3D가상현실을 금연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의사나 상담사와 마주 앉아 흡연 상황을 상상하거나 재연했기 때문에 흥미를 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정석 신경정신과 교수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3D로 치료 대상자가 광고 포스터부터 재떨이 하나까지도 흡연욕구를 자극하도록 꾸민 술집에 있도록 한 뒤, 아바타가 담배를 끈질기게 권하는 환경을 접하게 해 흡연 욕구가 최고조에 오를 때 갑자기 화면을 끝내 버린다.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해 흡연 유혹을 이겨내도록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심리학과 교수에게 자문해 가상현실을 꾸몄다”며 “프로그램을 4주 동안 접했을 때 흡연 욕구는 60%정도 줄어들었는데 이는 니코틴 보조제 같은 약물 치료 효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이 프로그램은 가상현실룸에서만 체험할 수 있었지만 최근 최 교수팀은 컴퓨터용 버전을 만들어 활용 범위를 넓혔다. 최 교수는 “전국 보건소와 여러 기업들이 활용 방법을 문의해 오고 있다”며 “비용 문제만 해결이 되면 쓰임새는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3D가상현실은 심장마비 응급처치와 출산 준비에도 쓰이고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 3D 솔루션 개발 기업인 다쏘시스템이 전 세계에 무료보급 중인 교육용 심장마비 응급치료 프로그램 ‘스테잉 얼라이브(Staying Alive)’는 사용자가 개인용 컴퓨터나 태블릿PC 등으로 응급처치 요령을 반복 연습하고 자신의 테스트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지난해 프랑스 파리데카르트의대 일루멘스 연구소가 개발한 ‘본투비얼라이브(BornToBeAlive)’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3D 가상분만실에 들러 장비도 살피고 분만실 분위기를 미리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 시 몸 동작도 연습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IT기기를 활용한 치료 프로그램은 ‘IT와 의료 융합’의 대표적 사례인 동시에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며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의료진과 환자가 실시간 소통까지 가능해지면 활용 폭은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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