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손녀가 죽었어. 내가 여기 안 살았으면 다른 학교에 다녔을 텐데….”
28일 오전 경기 안산시의 한 장례식장. 세월호 침몰 참사로 손녀 이모(17)양을 잃은 구모(67)씨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손녀와 친구들이 탔던 배를 통째로 집어삼킨 바다도, 제 살 길 바빠 승객들을 팽개친 채 배를 빠져 나온 선원들도, 허둥대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정부도 다 제쳐두고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흐느꼈다.
이양은 할머니를 유난히 잘 따랐다고 한다. 단원고에서 5분 거리, 할머니 댁 근처에 살던 이양의 가족은 2년 전 상록구 사동으로 이사를 갔다. 안산 끄트머리에 위치한 사동은 단원고에서 버스로 40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멀다. 하지만 이양은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 ‘할머니 댁과 가까운 단원고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홀로 계신 할머니가 외로우실 테니 학교 오가며 자주 들르겠다’는 이유였다. 이양의 부모는 집 근처 고교 2곳을 두고 굳이 먼 곳에 가겠다는 딸을 말렸지만 그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1지망으로 쓴 단원고에 진학한 이양은 하교길에 자주 할머니 댁에 들러 저녁을 함께 먹거나 구씨의 말동무가 돼주곤 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도 찾아와 “잘 다녀오겠다”며 할머니의 뺨에 뽀뽀를 하던 어여쁜 손녀였다. 그랬던 손녀가 탄 배가 침몰해 생사를 알 수 없는 동안 구씨의 속은 타들어갔다. 이양의 지인들도 ‘○반 이○○ 연락되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선배 저랑 친한 선배인데… 제발 도와주세요’ 등의 메시지를 인터넷 상에 올리며 애타게 찾았다.
이들의 바람은 지난 25일 DNA 검사를 통해 이양의 시신이 확인되면서 절망으로 변했다. 구씨의 한 이웃은 “할머니가 큰 충격을 받아 안산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음을 뗐다”며 “할머니가 너무 많이 울고 힘들어 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