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형사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공공교통, 인프라 등과 관련한 대형사고 시 관련 기업에 형법에 따른 책임을 묻는 이른바 ‘조직벌’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2005년 4월25일 효고(兵庫)현에서 발생, 107명의 사망자를 낳은 JR 후쿠치야마(福知山)선 열차탈선 사고 희생자 유족들은 개인만을 처벌대상으로 삼는 현행 형법을 개정, 지휘ㆍ관리 책임이 있는 거대 기업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조직벌’ 도입 연구모임을 지난 3월 만들었다고 도쿄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유족들은 2012년 발생한 야마나시(山梨)현 터널 붕괴사고 피해자들과 연대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등 다른 대형사고 피해자들과의 협력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후쿠치야마 사고 유족들의 논리는 유무죄의 ‘회색지대’에 있는 회사 관계자 개개인의 잘못은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회색지대의 문제들이 쌓일 경우 기업 차원에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철도회사 수뇌부가 법정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 받는 것을 보면서 조직벌 도입을 요구하게 됐다.
후쿠치야마선의 운영 책임을 맡았던 JR 서(西)일본의 전직 사장들은 민간인들이 참여하는 검찰심사회의 결정 등에 따라 형법상 업무상 과실 치사ㆍ상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에서는 잇달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개개인이 사고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고, 조직 차원의 안전관리 체제 미비는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범죄는 의사를 가진 사람의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생물이 아닌 법인은 처벌할 수 없다’는 형법의 원칙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독점금지법, 도로교통법 등에는 회사 직원뿐 아니라 고용자인 기업도 처벌할 수 있는 ‘양벌규정’이 있지만, 형법에는 양벌규정이 없다.
영국에서는 대형사고 피해자 유족들의 노력 속에 2007년 대중교통 사고와 관련된 기업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률이 도입됐다. 의사결정과 명령계통이 복잡한 거대 기업에서 특정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법인 자체에 형사적 책임을 물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정치헌금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본 정치가들이 기업에 불리한 법률을 만들려 할 것인지가 의문스럽고 거대기업을 처벌할 수단은 벌금밖에 없는 현실 속에 돈 많은 대기업에 벌금형을 내려본들 자성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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