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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

입력
2014.04.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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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은 둘째아이 생일이었다. 전날 사놓은 케이크를 자르고 촛불을 분 다음, 학교로 유치원으로 각각 흩어졌다. 저녁엔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뷔페에 가기로 했다. 한 달 전부터 약속했던 ‘또봇’ 장난감은 오후에 잠깐 이마트에 들러 살 계획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마냥 신이 나서 통원 버스를 탔다. 그러나 오후엔 아빠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고 쉬지 않고 징징거리기만 했다. 결국, 저녁 늦게 아이 손을 잡고 집 앞 문구사로 나가 천 원짜리 피카츄 뽑기를 해 주었다. 나는 뽑기 기계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의 작은 머리통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다음날부터 주말까진 별 다른 기억이 없다. 그 다음 주 예정된 중간고사 시험문제를 내다가 말고 리포트로 대체한다는 단체 문자를 보냈다. 그러곤 온종일 인터넷 뉴스와 페이스북만 바라보았다. 늦은 밤, 학교를 나서다가 환하게 불을 밝힌 도서관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철쭉이 처음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은 부활절이었다. 원래 아내만 혼자 교회를 나가는데, 이번엔 나도 따라 나섰다.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자꾸 목이 잠겼다. 옆에 앉아 있던 막내가 계속 울어서 손을 잡고 교회 앞마당으로 나왔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 아래 십자가가 우뚝 서 있었다.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신은 왜 인간에게 자꾸 고통을 안겨줄까?’ 계속 묻는 주인공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 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기장에 몰려든 나방들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모기장에 걸린 나방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너는 어떤 의미를 두느냐? 나방은 그것을 어떤 의미를 받아들이겠느냐’ 나는 그 소설을 계속 잊으려 애를 썼다.

월요일 아침엔 평소 알고 지내던 일간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며칠 팽목항에 머물면서 르포 형식의 원고를 써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 그러고 나서 내비게이션에 그곳을 찍어보았다. 120km, 시간으론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오후엔 국도를 타고 영암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나는 계속 다음날 있을 강의 준비 탓을 했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도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내가 슬퍼하면서도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강의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교양 강좌였다. 나는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자꾸만 말을 더듬거렸다. 애도는 정상적이고, 우울증은 병리적이다, 애도는 떠나간 대상에게 향하던 리비도를 철회하고 다시 다른 대상에게로 넘어가는 것이지만, 우울증은 떠나간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운운. 그러면서 나는 농담처럼 “우리 또한 한 달 뒤 월드컵이 열리면 모두 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열렬히 ‘대한민국’ 외치겠죠?” 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요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진 소설을 쓰려고 낑낑거렸지만,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계속 동료 작가들도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겠구나, 모두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묘하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기에 우두커니 창가에 서 있다가 불현듯 지난 주 화요일, 분양 받은 작은 텃밭에 심은 토마토와 가지들이 떠올랐다. 재래시장에서 모종을 사와 퇴비까지 함께 뿌려준 토마토와 가지들. 어린 토마토와 가지들. 새끼들 먹이려고 심은 토마토와 가지들. 나는 저녁 무렵 우산을 들고 바로 옆 동네에 있는 텃밭에 가 보았다. 어두컴컴한 텃밭엔 내가 호미로 심은 토마토와 가지들이 모두 말라 죽은 채,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었다. 비는 너무 늦게 왔고, 나는 너무 무심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다시는 그곳에 무언가를 심지 않으리. 심지 않고 가만히 내가 죽인 것들을 지켜보리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낸 지난 열흘이었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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