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이 나라에서 잘 클 수 있지? 애들은 너무 약하고 여린데…” 네 살 아이를 둔 H가 한숨을 쉬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허덕거리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눈을 빛내며 곧잘 얘기하던 친구였는데, 요즘은 목욕을 시키다가도 밥을 먹이다가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가 그쪽으로 흐른 건 대형 참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H가 유아의 엄마였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 ‘잘한 결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 선배는 심지어 부럽다고까지 했다. 중학교를 다니는 딸의 얼굴에 불행의 기색이 역력한데 손을 써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부럽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강퍅한 현실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감과 죄책감이 그런 말을 흘리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돌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회. 아이들의 마음은 경쟁의 전쟁터 속에 몰아넣고 아이들의 몸은 폭력과 학대 속에 방치하는 사회.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해외로 입양 보내고 부모가 외국인인 아이들은 무국적으로 팽개쳐 두는 사회. 어쩌다 우리는 이런 몹쓸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일까. 누가 누구를 부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 그래야 한다면,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아이가 없는 나를 부러워하느니, 아이가 없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이들을 부러워해야 한다. 최소한 그런 세계에 살아야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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