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자 발언의 진의를 놓고 일본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발언 수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당황하는 분위기가 보이는가 하면, 오바마의 발언을 “미래지향의 관계 개선” 주문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일본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위안부 발언에 대해 “한국 쪽에서 시킨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비웃는 말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런 발언에서 일본 정부가 오바마의 비판에 얼마나 당혹했는지 감지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 참배 정당화 등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먼저 언급하며 “매우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 “전쟁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쇼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 동안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현안이 아닌 ‘위안부 문제’ 자체를 거론한 적이 드물었다. 아베 총리도 오바마의 이 발언을 의식해 27일 일본 기자들에게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21세기를 만들기 위해 일본도 큰 공헌을 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본 정부는 대체로 위안부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며 발언의 진의를 한일 미래지향 관계 구축에 있는 것으로 보려 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 관방 부장관은 25일 저녁 방송에 출연해 “아베 총리는 필설로 다하기 힘든 고통스런 경험을 한 분들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며 “(위안부 문제 등을)정치ㆍ외교문제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토 부장관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대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내비쳤다.
또 다른 일본 정부 당국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한일이)미래지향적으로 관계 개선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일본이 이 문제와 관련해 노력하는 것도 (미국이)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아사히신문도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과거의 긴장을 성실하게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에도 눈을 돌려야 하다”는 발언을 인용해 오바마가 한국측에도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했다.
미국이 ‘미래’를 키워드로 한일간 갈등을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실망” 성명을 포함해 역사문제에서 일본에 따끔한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미 정상회담 전날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
회견이 끝날 무렵 미국 기자가 아베 총리에게 “야스쿠니 참배 등으로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아베가 “야스쿠니 방문은 국가를 위해 싸워 상처 받고 쓰러진 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며 이는 세계 많은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자세”라면서 “이런 생각을 앞으로도 설명해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참배를 정당화하자 통역을 통해 듣던 오바마의 아베를 향한 시선이 싸늘해졌다.
역사문제 때문에 일본과 주변국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공동보조를 부추긴다는 점을 미국이 우려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는 ‘왜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가버리게 할 일을 하는가’고 화를 낸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