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합동분향소에 가족 단위 조문객 가득
"바쁘단 핑계로 무심했는데" 다른 모임들 취소하고 식구들 함께 모여 식사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시민들은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구조작업에 가슴 졸이면서도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내려는 분위기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뭉클한 사연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시민들이 많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은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이정훈(40)씨는 “전날 초등학생 아들, 딸과 함께 안산 단원고 학생ㆍ교사들의 임시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다녀왔다”면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가족의 의미를 보여주려던 것이었는데, 나조차 아이들에게 가족사랑이 뭔지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무심했는데 앞으로는 가까운 곳이라도 찾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무로 주말에 특히 바쁜 A(50ㆍ경기 고양시)씨 가족도 26일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A씨와 마찬가지로 주말에 근무하는 그의 아내가 먼저 “가족 모두 모여 밥을 먹자”고 이야기했던 것. A씨는 “큰 딸이 고교 2학년으로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내기라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며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나도 아내도 가족을 더 많이 챙기게 된다”고 말했다.
가수 지망생 김현우(21)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김씨는 중학교 때 가수의 꿈을 반대하던 아버지와 크게 말다툼을 한 뒤 지금껏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이들 부자는 26일 저녁, 7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 앉았고 술잔을 기울였다. 김씨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기사를 읽는 내내 아버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며 “아버지가 아직 내 꿈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내 진정성을 알아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학교 분위기도 바꿔놓았다. 올해까지 학생주임만 4년째 맡아 별명이 ‘저승사자’인 인천 모 고등학교 최모(43) 교사는 “학생들에게 ‘너희가 있어 고맙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며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어색해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면서도 혹시나 자신들의 행동이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해치는 모습으로 비칠까 염려하기도 했다.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경기 양평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김기훈(38)씨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고 한 달 전 약속했던 주말 대학 동기모임을 취소하고 대신 가족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초등학생 아들 둘이 뉴스를 접한 이후 계속 침울해 보여 분위기 전환을 위해 간 것이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죽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할텐데 마음 한 구석에선 이래도 되나 싶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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