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인간이 지구 안쪽으로 뚫고 들어간 게 겨우 12km라는 거? 보이저 1호는 지구 바깥 몇십억 킬로를 떠가고 있는데 말야.” 지역주민을 위한 공동체 운동을 하는 J가 이 말을 한 건 이삼 년 전이었다. 한 농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설렘과 안타까움이 복잡하게 얽힌 표정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각자의 화산이 끓고 있는 마음속.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지구가 알려주는 셈이지.” 대안 네크워크를 꾸리는 동안 부딪힌 여러 난관, 사람들이 보여준 뜻밖의 열정, 또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예기치 않은 상처들이 그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이었으리라. 이제 와 J의 말이 다시 떠오른 건 세월호가 가라앉아있는 수심 37m 때문일 것이다. 첨단의 기계문명 속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12km는커녕 50m도 안 되는 물속이 이렇게 속수무책이라니. 수습에 나서줘야 할 사람들의 내면도 이렇게 오리무중이라니. 요즘 밤하늘엔 토성이 뜬다. 저녁 8시쯤 떠서 아침 6시쯤에 지니 일 년 중 토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기다. 토성은 오랫동안 침울함의 별, 멜랑콜리의 별이었다. 그 침울함을 상쇄시켜 줄 만큼 아름다운 고리도 지녔건만, 고리를 찍어 송신해준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넘어 한없이 멀어져가고 있고, 물밑에 대한 일말의 희망 또한 그렇게 멀어져가고 있다. 지금은 토성의 어두운 기운만이 이 땅을 덮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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