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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대양사건

입력
2014.04.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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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경기 용인의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공장에서 남녀 시신 32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공장장은 대들보에 목을 매 자살했고, 사장 박순자를 비롯한 31명은 식당 천장에서 노끈에 목이 매인 채 숨져 있었다. 수면제가 든 약병이 뒹굴고 있었고 저항의 흔적은 없었다. 사이비종교의 집단 최면에 빠져 900여명이 희생된 가이아나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엽기적 사건이었다. 수사당국은 거액의 사채 독촉으로 궁지에 몰린 채무자들의 집단자살로 결론 내렸다. 박씨와 대부분 직원이 ‘구원파’여서 배후로 당시 이 교파를 이끌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지목됐으나 밝혀지지 않았다.

▦ 건국 이래 최대 미스터리로 불린 이 사건은 그 후 두 차례 더 수사가 진행됐다. 5공 권력 유착설이 끊이지 않자 대검 중수부가 1989년 재수사에 나섰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91년 오대양사건 당시 잠적했던 직원들이 이 사건과는 별개로 직원 3명을 살해했다고 자수해 와 세 번째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다만 유씨가 구원파 신도들의 돈을 가로챈 사실이 드러나 징역 4년 형을 확정 받았다.

▦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실소유주가 유씨로 알려지면서 27년 만에 오대양사건과 구원파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이 종파는 목사인 유씨의 장인이 세운 것을 유씨가 물려받은 것으로 ‘한번 구원 받으면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리를 내세워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 받는다. 97년 세모의 부도로 몰락했던 유씨가 불과 2년 뒤 청해진해운을 설립하며 재기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과 맞물려 의혹이 커지고 있다.

▦ 오대양사건에서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오대양이 빌린 사채 170억 원의 행방이다. 이 돈이 몽땅 유씨 측에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많았다. 오대양의 사채가 현재 유씨 일가가 소유한 수천 억 원 대의 재산을 형성한 종자돈이 됐는지 여부가 검찰이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객관적 물증 확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과 유씨와의 숙명적 네 번째 만남의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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