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군사 외교분야의 탄탄한 우호관계와 달리, 한미 양국간 경제분야에선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둘러싼 미국의 불만은 생각보다 컸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뒤늦게 노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 역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한미 FTA 이행과 관련한 대표적 갈등은 원산지증명.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상대국이 자국 관행에만 맞춰 지나치게 까다로운 원산지 증명을 요구한다는 불만을 가져왔다. 지난해 6월 한국 관세청이 미국산 오렌지 주스에 대해 “원산지 규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조사에 들어간 게 단적인 예다. 관세청은 브라질산 오렌지 농축액이 사용된 단서를 포착, 미국의 4개 업체를 상대로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이는 통상 마찰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였지만 최근 “브라질산이 섞인 사실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 특혜관세를 유지하는 쪽으로 일단락됐다.
한국 또한 미국에 대해 “원산지 증명 요구가 잦은 데다 검증 절차도 워낙 복잡하다”며 시정을 요구해 왔다. 관련 서류 발급시스템이 없는 수출중소기업들이 관세 혜택을 누리지 못하거나 ‘관세 폭탄’을 맞는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 관계자는 “두 나라 관세 당국 사이에 원산지 검증과 관련한 공통의 기준(standard)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5일 회담에서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그 동안 양국 기업들의 문제 제기가 많았던 원산지 증명 문제가 사전에 원만히 해결됐다”며 “양쪽이 공동 문건을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견이 좁혀졌다”고 전했다. 한 통상전문가는 “FTA 이행을 둘러싼 불만은 미국 쪽이 훨씬 컸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미국 측 요구를 한국이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 FTA 이행에 대해 ‘성의’를 보인다면, 미국측도 한국의 TPP협상 참여를 더 이상 냉소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은 한국이 TPP협상에 관심을 표명한 것을 환영한다. TPP의 높은 개방 수준을 달성하는 데 있어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구체적 관심사항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미일 사이의 조율실패로 TPP 협상 타결이 난항을 겪고 있는 만큼 굳이 서둘러 참여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명진호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5월에 TPP 각료회의가 잡혀 있는데 이 때가 결국 TPP 협상 조기타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하반기로 넘어가면 11월 미국 중간 선거가 있어 TPP 논의가 더 이상 진척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두 나라 정상은 신재생 및 스마트그리드 등 클린에너지 분야 협력도 강화키로 합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에너지부 간 저장시스템(공기압축저장) 공동 실증연구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미국 해군과 군사시설에는 제주도 실증사업으로 검증된 한국의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기술이 적용된 안정적 전력공급망도 구축키로 했다. 아울러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 사업과 관련한 정보 공유 촉진 방안, 한국 기업의 참여 확대 등도 논의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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