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망언은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사고 당일인 16일 가족들이 실종자 생사를 몰라 물도 못 넘기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테이블 위의 응급의료품을 치우고 태연히 컵라면을 먹었다. 18일 안산 단원고 학생의 빈소를 찾았을 때는 수행원들이 유족들에게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알려 싸늘한 눈총을 받았다. 20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송영철 안전행정부 감사관은 침몰사고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직했다. 21일 오전 현장 지원을 나갔던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구급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이들에 대한 철저한 문책을 밝혔지만, 청와대 인사들의 망언이 이어졌다. 서남수 장관이 컵라면을 먹은 것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며 두둔했다. 정부의 수습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21일 “한번 도와주소.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삼는 것은 조금 뒤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공직자들이 사고 수습에 총력을 다하기는커녕 정권의 안위에 미칠 영향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실종자 가족 항의 동영상을 올린 뒤 이들을‘선동꾼’이라고 폄훼했다.
책임회피의 극단은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가 안보 재난의 컨트롤타워라고 했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3일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힌 대목이다.
내 자식, 내 부모를 잃은 듯 슬픔에 빠진 국민이 보기에 이 같은 망언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공직자로서 무책임과 몰염치에 가깝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위주의적이고 무책임한 관료들의 평소 태도가 이번 사태로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이원종 전 청와대 수석은 “관료들의 공직의식이 이 정도로 결여돼있다면 또 재난이 일어나도 같은 과오를 범할 것”이라며 “책임윤리를 동반하지 않은 권력은 폭력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고 일침을 박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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