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바다 속에서 열흘만에 햇빛으로 나온 시신이 해경 경비정을 타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들어온다. 팽목항 임시주차장에 20여대가 길게 늘어선 구급차 사이 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던 전남 소방서 구급대원 문모(39)씨가 주춤 일어선다. 해경정이 선착장에 닿으면 시신을 들것으로 구급차에 태워 임시안치소로 옮기는 일을 문씨는 17일부터 해왔다. 부두에서 임시안치소까지 거리는 70m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서 고인은 가족을 찾는다. 임시안치소 바로 옆 신원확인소에 들것으로 시신을 내려놓으면 인상착의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가족들이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대면한다.
25일까지 시신 50여구를 옮겼다는 문씨는 “6명의 구급대원이 들것으로 시신을 옮기는데 날이 갈수록 시신이 무겁다”고 말했다. 물에 잠겨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불어서 그렇지만, 문씨의 팔이 느끼는 무게는 그 이상이다. “내일은 비까지 온다는데…”라며 한숨을 내쉰 문씨는 “빨리 배에서 꺼내야죠”라고 말했다.
순천소방서 구급대원 신모(44)씨는 안산 단원고 학생의 시신을 아버지와 함께 목포 한국병원으로 옮겼다. 시신 옆에 함께 탄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이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니, 한두명도 아니고…. 나도 아버지이지만 위로할 말이 한마디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다른 구조대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모(35ㆍ여) 경위는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관료들이 방문하거나 구조작업이 지연돼 크게 흥분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몸싸움도 많이 겪었다. 어느 순간엔가 가족들 손에 계급장을 뜯긴 일도 있지만 “그것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바다를 보면서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라, 제발’이라고 오열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다가가 안아 드렸어요.”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 대기소’라는 문패를 단 흰 텐트 앞에서 시신 확인을 위해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안내하는 최모(27ㆍ여) 경위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재빨리 훔쳐냈다. 그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데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며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신원확인소 옆 응급지원센터에서 만난 김성중(48) 조선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실종자 가족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툭 치면 깨지는 유리 같은 상태라 의료진들도 긴장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배에서 구조된 학생들을 치료하러 왔는데 지금은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며 “제발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25일부터 구급대원들은 팽목항 부둣가를 지키기 시작했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10m 간격으로 바다를 등진 채 24시간 해안 경계를 선다. 한 구급대원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신원확인소 안에서 자식의 얼굴을 확인한 어느 부모의 가슴 깊은 바닥에서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도=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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