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지난 18일 발표한 조직 개편. 가장 주목을 받은 건 ‘기획검사국’의 신설이었다. 작년부터 온갖 금융사고가 잇따르는데 금융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들끓자 대형 금융사고를 전담하겠다며 설립한 부서다. 산하에 금융 사고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분석하는 금융경영분석실을 두고 문제 징후가 포착되는 즉시 현장 검사에 나서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금감원장 지시에 따라 특명 검사도 실시하겠다는 것. 지금은 폐지된 대검 중수부를 벤치마킹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금융계 중수부’라는 별칭이 붙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직 채 정비조차 되지 않은 기획검사국에 벌써 특명이 떨어졌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관계사의 금융권 대출이 정당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 출범 후 첫 임무인데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관심이 높은 사안이기 때문에 그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여론에 떠밀려 너무 서둘러 기획검사국에 임무를 맡긴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감원 기획검사국은 25일 소속 검사역들을 산업은행, 경남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에 보내 청해진해운 계열사에 대한 대출현황 점검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이날 부랴부랴 소속 인력 40명 가량을 충원했다.
은행권에서 청해진해운 등 관계사 10여곳에 대출한 금액은 작년 말 현재 확인된 금액만 1,734억원. 기획검사국은 이번 검사를 통해 은행들이 청해진해운 소속 선박들을 담보로 잡을 때 안전성 점검을 제대로 하고 또 대출 사후 관리를 충분히 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권순찬 기획검사국장은 “배나 건물을 담보로 잡을 경우 사고 등으로 담보 가치가 사라지는 위험이 있는 만큼 담보물에 대한 안전성 평가와 사후 담보물 관리를 하도록 돼 있다”며 “안전행정부의 안전성 기준과 은행 자체 내규 등 관련 규정들을 은행들이 지켰는지 여부를 따져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 전 회장 일가를 지원하는데 계열사의 대출금이 유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출금 집행 내역에 대한 정밀실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유 전 회장 일가는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지주회사로 40곳이 넘는 계열사와 관계사를 지배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의 연간 순익이 10억~20억원 수준에 불과하고 적자인 기업도 상당수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들 기업들이 초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부당한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청해진해운 관계사에 대출을 해준 은행은 모두 10여곳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은행들로 검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유병언 일가와 돈 거래를 해온 신협에 대해서도 특별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획검사국의 한 관계자는 “사실 여론에 떠밀려 서둘러 조사에 착수한 측면이 강하다”며 “워낙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이라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여론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국세청ㆍ관세청과 함께 유 전 회장 일가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계열사에 대해 불법 외환 거래나 역외 탈세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유 전 회장의 일가가 불법으로 해외 자산을 취득하고 투자를 하는 데 계열사를 이용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또 유 전 회장 일가가 아해프레스프랑스 등 13곳의 해외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법 외환 거래가 있는지도 들여다 볼 예정이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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