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어서 돌아오세요,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우린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25일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리두(麗都)호텔. 경찰 차량 10여대가 늘어 선 정문을 지나 말레이시아항공 MH370 여객기 중국인 탑승객 가족들이 모여 있는 2층 대회의실로 들어서자 이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MH370은 인도양 남쪽 해역에 추락해 해저에 침몰한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날로 실종 49일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의 발표 대로 탑승객이 살아있을 리 만무하지만 가족들은 시신을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실낱만도 못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체 탑승자(239명)의 60%를 넘는 154명(대만인 1명 포함)의 중국인 승객 가족모임인 말레이시아항공MH370가족위원회 회의실 벽면은 온통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쪽지 글로 도배가 돼 있었다. ‘여보, 우리 아이를 아빠가 없는 불쌍한 아이로 만들지 마세요’ ‘엄마, 빨리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해 주세요’ ‘마누라, 당신이 없는 시간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오’ ‘이제 결코 당신 혼자 여행을 떠나게 하지 않겠어요’.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인 회의실의 분위기는 침울하고 숙연했다. 가족들은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나눴다. 휴대폰의 가족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단란했던 때를 회상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이용, 관련 기사들을 쉴 새 없이 검색했다. 한쪽 벽엔 최신 소식들이 게시돼 있었고 초대형 TV도 켜져 있었다. 점심 시간에도 행여 새로운 뉴스가 올 지 몰라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다잡으려 해도 마음의 병은 어쩔 수가 없는 듯 했다. 회의실 한쪽에 마련된 심리치료실엔 가족들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방도 따로 꾸며져 있었다. 촛불을 켜고 기원을 적을 수 있도록 한 책상도 보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응급구호팀도 자리를 지켰다.
회의실 맨 앞엔 ‘약속을 이행하라’는 큰 글자가 붙여져 있었다. 수색 작업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는 요구이자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달란 외침이다. 가족들의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실제로 실종자 가족들은 전날 밤 베이징 주중 말레이시아 대사관으로 몰려 가 밤샘 시위를 벌이며 진상 해명과 책임자 면담 등을 요구했다. 일부는 대사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밤을 지새운 뒤 25일에도 대사관 앞을 떠나지 않았다. 네티즌의 지지글이 잇따랐다. 일부 중국인은 생수와 음식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가족들과 말레이시아 당국의 면담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중국 당국의 통제 탓인지 언론 보도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에 앞서 MH370 중국인 탑승객 가족들은 지난달 25일에도 말레이시아항공이 ‘생존자가 없다’는 문자를 전송한 데 격분해 말레이시아 대사관까지 거리 시위를 벌이고 물병 등을 투척했다.
가족위원회는 이날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수색과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작업을 영원히 포기할 수 없다”며 “전세계의 양심과 정의감을 가진 이들, 언론 매체들과 정부들은 우리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위원회는 또 “우리의 국가가 국가의 존엄을 위하여 154명의 생명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말레이시아 항공기 실종 사건과 관련해 “국제 조사팀에 중국 대표들을 파견할 것”이라며 “수색 작업에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실종기는 블랙박스는 고사하고 부서진 동체의 작은 한 조각 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희망은 꺼져가고 있다. 커져 가는 것은 분노고 남은 것은 슬픔뿐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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