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배려하면서도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정부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는 걸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9일째가 됐지만 정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딘 시신 인계 절차로 유가족들의 원성을 사면서도 정작 불리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게 지금 정부의 모습이다.
정부는 24일 뒤늦게 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 지원을 담당하겠다며 임시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이 ‘범정부지원 상황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올림픽기념관 내 안산도시공사에 마련될 범정부지원 상황실은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와 해양수산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등 정부 부처 관계자 20여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단원고에서만 이미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장례 절차를 대부분 마무리한 상황에서 지원 상황실 설치는 뒷북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경기도합동대책본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더구나 안산 화랑유원지에 정식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안산시가 의견 충돌을 빚었던 점을 감안하면, 뒤늦게 나선 정부 때문에 주요 결정 사안의 합의 도출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에서는 수습된 희생자 시신 인도 문제 때문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시신이 안치된 진도 팽목항 임시 안치실 앞에는 시신을 확인하려는 유족들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게다가 이날 오전 진도체육관에서는 당초 하루면 끝난다고 했던 유전자 검사 결과가 “3일 뒤 나올 수 있다”는 안내방송까지 나와 유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일반인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일반인 사망자의 장례를 각 지방자치단체가 맡도록 했지만 이미 비용 지원 없이 장례를 마친 희생자도 있어 형평성이 무너졌다. 지자체들은 대책본부가 실종자 명단을 제공하지 않아 자체적으로 실종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신 인도 지연에 대한 항의가 잇따르자 대책본부는 신분증이나 신체특징으로 가족임이 확인되면 DNA 샘플을 채취한 뒤 유족에게 시신을 가인도 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진도에는 실종자 가족을 돕겠다며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정부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리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이날까지 안산,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적십자, 대한불교 조계종, 기독교연합회 등 80여 민간단체 소속 1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진도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급식, 모포와 식수 지급, 의료 봉사 등 실종자 가족들에게 필요한 서비스 제공은 사실상 민간이 전담하고 있는데도 이를 지휘할 중앙관리시스템이나 지자체의 전문인력이 없어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일주일 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모씨는 “총괄 지휘 체계가 없어 자원봉사자들의 숙박 문제 해결은커녕 기본적인 업무 분장조차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 혼선이 많다”며 “자원봉사자 천막이 생긴지 8일 만에 여성 자원봉사자를 위한 탈의실이 설치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비판적 언론 보도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리는 해명자료는 실시간으로 배포해 변명과 책임회피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23일 오후 10시25분쯤 해양수산부는 해양사고 및 해양재난관리법 등의 문제를 지적한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사고대책본부에 보냈고, 대책본부는 2시간 뒤인 밤 12시30분쯤 자료를 취재기자 100여명에게 발송했다.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해명자료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 배포되고 있어 지나친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진도=하태민기자 hamong@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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