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30일 우리나라 국책사업 사상 처음으로 ‘사전 공론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 기구가 꾸려졌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로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남은 폐기물을 일컫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라면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은 총 23기의 원전을 가동해 국가 전체 전력의 4분의 1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사실 원전은 한국에서 가장 현실적 발전 방식으로 꼽힌다. 전기 생산비용이 가장 싸고, 온실가스도 전혀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는 자원빈국의 입장, 지구온난화의 급격한 진행에 따른 전 세계적 온실가스 감축 움직임 등을 감안할 때, 경제성과 환경친화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건 원전 만한 게 없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엔 전제조건이 따른다. ‘안전’이 100%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전제가 무너질 경우 원전은 재앙이 된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나 일본 후쿠시마 사태(2011년)가 그런 경우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리문제는 ‘원전 안전’을 위한 마지막 단계. 사용후핵연료에는 ▦애초 핵연료였던 우라늄 찌꺼기(93.4%) 말고도 ▦핵분열생성물(5.2%) ▦플루토늄(1.2%) ▦초우라늄원소(0.2%) 등이 포함돼 있는데, 강한 방사선과 고열을 내뿜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어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된다. 핵분열생성물은 300년 정도 지나면 방사능이 대부분 사라지지만, 플루토늄 등은 반감기가 수천~수만년에 달한다. 그저 원전만 별 사고 없이 운영한다고 해서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원전 도입 37년째인 한국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논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방사능덩어리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둘 것인지의 문제는 워낙 ‘뜨거운 감자’라 애써 외면해 왔던 측면이 크다. 1988년 원자력위원회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을 1995년 2월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1997년 12월 말까지 건설한다”고 의결하긴 했지만, 일방통행 식 사업추진 때문에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안면도 사태(1990년)가 그랬고, 굴업도 사태(1995년)도 그랬으며, 민란수준으로 번진 전북 부안 사태(2003년)는 그 정점이었다.
게다가 이 사태들은 사용후핵연료가 아니라, 위험이 훨씬 덜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원전 또는 방사능을 다루는 공장 연구실 등에서 나오는 작업복, 장갑 등) 처리장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는데도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하물며 사용후핵연료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2004년 “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찾겠다”고 한 것도, 이명박정부가 임기 5년 동안 거의 건드리지도 않다가 현 정부로 공을 넘긴 것도 그만큼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방법에는 ▦원전 수조 내 임시저장 ▦지상에 보관하는 중간저장 ▦지하 500m~1㎞ 깊이의 암반층에 묻는 영구처분(또는 최종처분) ▦연료 속 플루토늄 재처리(또는 재활용)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임시저장’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750톤씩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되는 현 속도를 감안하면,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22년이면 모든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연료봉을 보다 촘촘히 쌓는 ‘조밀랙’ 방식을 취하거나 저장공간을 확장한다 해도 2024~2037년이 한계다.
때문에 보다 근원적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건, 그리고 워낙 폭발력이 큰 사안인 만큼 이를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공론화위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원전을 통해 값싼 전기의 혜택을 수십년 동안 누리면서도 그에 대한 정당한 비용은 지출하지 않았다”며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공론화하는 것은 사회적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를 해제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은 ‘중간저장’이다. ‘영구처분’은 기술적 문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실시 중인 곳이 없다. ‘재처리’는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미 원자력협정 조항에 묶여 있어 현재로선 불가능한 대안이다. 그렇다고 임시저장 시설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결국 중간저장시설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에는 냉각방법에 따라 습식과 건식이 있다. 지금까지는 물로 냉각시키는 습식 방식이 주로 쓰였는데 방사능 오염수가 발생한다는 게 단점. 불활성 기체나 공기를 냉각재로 쓰는 건식 방식은 방사선이나 물리적 손상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또는 금속을 이용해 외부와 차단하는 방법인데, 부산물이 적고 확장도 용이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연말까지 활동할 공론화위도 이런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쪽에 집중할 방침. 하지만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공론화를 위한 속도는 너무 더뎌 보인다. 이달 초 국내 거주 성인 남녀 2,52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현재 사용후핵연료의 보관 방법(임시저장)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충분한 정보제공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7점이 매우 지지)를 보인 관리방식은 영구처분시설 건설(4.86)이었고, 중간저장시설 건설(4.32) 임시저장 유지(4.00)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진짜 난제는 부지 선정이다. 아무리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둔다 해도 방사능덩어리 저장고를 선뜻 받아들일 지역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진짜 공론화’는 부지 선정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공론화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부지 선정과 관련해 어떤 점들을 고려하고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등은 공론화위에서도 논의하지만 구체적 선정 작업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로운 선정절차가 될지, 아니면 제2의 부안사태가 될지 결과를 예단키 힘들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건국 이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뜨거운 국책사업이 될 것이란 점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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