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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억압과 자유 향한 땀 고스란히 여성들의 얼굴, 한국 사회 자화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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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억압과 자유 향한 땀 고스란히 여성들의 얼굴, 한국 사회 자화상이죠"

입력
2014.04.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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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이란 걸 모르고 살아왔어요.”

중년을 넘어 장년에 이른 여성의 표정은 딱히 침울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듯, 체념한 듯 그는 난생처음 보는 외국 여성 앞에서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털어놨다. 프랑스 작가 다나 레이몽 카펠리앙(51)이 출간한 인터뷰 사진집 한국의 여성들에는 14세 소녀부터 87세 할머니까지, 그가 지난 5년간 만난 한국 여성 60여명의 사연이 녹아 있다.

2010년 9월 주한프랑스문화원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온 카펠리앙은 자신의 새로운 삶 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자 한국 여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해녀, 판사, 무당, 농부, 의사, 서예가, 가사 도우미, 요구르트 배달원, 그리고 한국아줌마협회라는 생소한 단체의 협회장까지, 다양한 직군의 여성들이 카펠리앙에게 집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결혼 실패로 이혼녀 딱지를 달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버린 20대 여성, 살림과 육아, 일을 병행하느라 하루에 4~5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치과보조사, 딸을 유학 보내며“나처럼 살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라”고 당부한 전업주부.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여성의 모습은 자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섬뜩하다.

다음은 23일 만난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한국 사람 중에서도 여성에 관한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을 더 알고 싶었다. 한국은 전통적 봉건사회로부터 21세기 현대사회로 단기간에 탈바꿈했다. 나는 전통 유교사상과 21세기의 대안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그 안에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됐다. 이 책의 여성들이 한국 여성이나 한국 사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의 사연을 통해 나는 그들이 견뎌야 했던 시대적 압박감과 여성으로서 자유를 찾기 위해 쏟은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삶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를 가장 어렵게 한 것은 ‘침묵의 법칙’이다. 서구인들이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지 않은 데 비해 한국 여성들은 아픔을 겉으로 내어 말하거나 공유하는 것을 꺼렸다. 가족과의 인연이나 의무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자유를 쟁취하는 서구와 달리 한국 여성들은 남편의 요구와 가정을 위한 일,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전통이 반드시 타개해야 할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은 종종 숨 막히게 답답하지만 가족의 결속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여성과 남성, 한국인과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 모두를 위한 책이다. 편집자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한국 남자로서 내 평생 한국 여성의 인생사를 이렇게 한꺼번에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여성들이 무엇을 극복해야만 했는지 알게 됐고 이제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책은 소통에 관한 것이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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