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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들의 '파업' 선언 그들은 왜 단단히 화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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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들의 '파업' 선언 그들은 왜 단단히 화났을까

입력
2014.04.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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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Sherpa)는 네팔 쪽 히말라야에 거주하는 티베트계 고산족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셰르파란 단어는 히말라야의 고산을 오르려는 이들을 돕는 ‘등반 가이드’와 동의어로 여겨져 왔다. 산악인들을 대신해 루트를 개척하고 짐을 짊어지며, 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들이 모두 셰르파족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적은 산소와 낮은 기압으로 인한 고소병을 앓고 힘들어하는 고산지대에서 셰르파족은 큰 장애를 느끼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선한 심성을 지닌 그들은 충성심이 강해 한번 약속을 하면 목숨을 걸어가며 산악인들을 돕는다. 네팔로 원정이나 트레킹을 떠났던 이들이 히말라야의 풍경과 함께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셰르파들의 따뜻한 정이기도 하다.

그 선한 셰르파들이 지금 단단히 화가 났다.

발단은 지난 18일에 일어난 눈사태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의 기본 루트의 초입인 해발 5,800m 지점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당시 등반로에 밧줄을 설치하던 셰르파 1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눈에 파묻혀 실종됐다. 지금까지 에베레스트에 눈사태로 일어난 단일 사건으론 최악의 인명 피해다.

셰르파들은 22일 동료의 장례를 치른 뒤 “짐을 싸 산을 떠나겠다”며 파업을 선언했다. “3명의 동료가 아직 눈밭에 묻혀 있는 상황에서 동료를 밟고 산을 오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열악한 처우 개선도 요구했다.

등반을 비롯한 관광이 주수입원인 네팔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네팔은 매년 입산료로만 약 36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당장 희생자 유가족에게 4만루피(약 43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부상당한 셰르파와 가족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입산료 수입의 5%를 적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셰르파에 대한 보험금도 200만루피(약 1,600만원)로 2배 인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43만원 돈의 위로금은 셰르파들의 화만 돋웠다. 셰르파들은 더 많은 위로금과 함께 입산료 수입의 30%를 기금에 적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모여있던 각국에서 온 원정대들도 난감하다. 셰르파 없는 등반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원정대는 철수를 결정했고, 아직 네팔에 도착하지 않은 원정대는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원정대들은 어서 빨리 네팔 당국과 셰르파간 협상이 이뤄져 예정된 등정을 할 수 있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NBC뉴스는 셰르파와 그 가족들을 취재해 외국의 원정대들을 위해 목숨을 걸며 함께 산에 오르는 셰르파들의 삶과 문화를 조명하는 기사를 최근 보도했다. NBC에 따르면 이번 사고에 대해 셰르파 마을의 몇몇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셰르파의 등반에는 항상 죽음이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셰르파는 400년 전 티베트고원에서 에베레스트자락 쿰중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처음 이주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으며 문자가 없는 셰르파어를 네팔어와 함께 사용한다. 현재 셰르파족은 약 10만명 가량 된다고 한다.

셰르파가 등정대의 가이드를 맡게 되면 짐 하나 실어 올리는 데 125달러씩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1년 평균수입이 700달러에 불과한 네팔에서 이는 굉장히 좋은 돈벌이다. 등반이 위험한 일인 건 알지만 가난한 그들에겐 3개월의 짧은 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셰르파인 상게 고르제(53)는 18세때 등반 가이드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그는 등반사업을 할 정도로 큰 돈을 모았고, 10년 전 미국의 아이다호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역시 에베레스트를 찾는 외국 산악인들의 등반을 도왔다. 고르제의 아들도 등반 일을 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2번이나 밟은 아들은 2년 전 24세의 나이로 산에서 죽음을 맞았다. 고르제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요.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들은 정말 빼어난 등반가였는데…”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셰르파인들은 오래 전 에베레스트를 신성시 해 이곳을 오르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953년 영국탐험대의 힐러리 경이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첫 등정에 성공한 이후 매년 수많은 산악인들이 세계 최고 높이에 오르려 에베레스트를 찾고 있다. 그리고 셰르파들에게 안내를 해달라고 손을 내민다.

고르제는 “오랜 시간 많은 셰르파들이 에베레스트에서 죽어나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건 마치 군대에 입대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총을 쏘고 그래서 당신은 죽을 수도 있죠.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군대에 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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