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와 변침(變針?항로변경)을 지시한 3등 항해사 박모(25ㆍ여)씨, 키를 잡았던 조타수 조모(55)씨는 조타기 고장을 우선적인 사고 원인으로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침몰 원인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이 3명은 지난 19일 구속돼 목포해양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상태에서 지난 21일 강정민(41) 법무법인 영진 변호사와 6시간동안 접견을 갖고 사고 당시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조타 실수, 사고 전 이상을 발견했을 가능성 등 이들의 진술은 사고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강 변호사가 전한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 전까지 아무런 이상 없이 정상적인 운항을 했다. 이들은 “오전 8시 이전까지 잠수함이나 어선 등 운항에 방해되는 어떠한 장애물도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합동수사본부도 암초 등 외부 충격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급변침해야 할 원인도 따로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박씨와 조씨가 짝으로 조타실 근무를 시작한 오전 8시 이후 맹골수도를 거의 벗어난곳에서 5도씩 2단계 변침을 실시하다 두번째 변침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승무원들의 주장이다. 조타수 조씨가 항해사 박씨의 지시에 따라 변침을 위해 키를 돌렸는데 두번째 추가 5도 변침에서 배가 기우뚱하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조씨는 즉시 반대 방향으로 15도 정도 키를 회전시켰고 그 순간 배가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듯이 돌면서 왼쪽으로 기울었다. 조씨는 “배가 순식간에 30도 정도 기운듯했다”고 말했다. “단 몇 초만에 배가 확 기울었다”는 승객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승무원들의 주장은 우선 조타기의 결함을 시사한다. 해양수산부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분석에서 나타났듯이 오전 8시 48분 발생한 정전 때문에 조타기가 통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100% 기계적 결함이 문제였다고 믿기는 어렵다. 과거 조씨가 “타가 평소보다 빨리 돌았다”고 진술한 것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조씨가 “내 실수”라고 언급했던 것이 반대방향으로 15도 급회전시킨 것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또 다른 조타 실수가 있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침몰 사고의 핵심 피의자인 만큼 자기방어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크다. 강 변호사는 “이준석 선장이나 조씨는 사고 전후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반면 항해사 박씨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장 이씨는 조타기를 돌리는 순간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박씨는 기억을 못하고, 조씨는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 할 가능성이 높아 이들의 진술을 면밀하게 대조해야 한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조씨가 “20여 분간 밸러스트 탱크(평형수 탱크)로 선체 복원을 하려다 여의치 않아 비로소 해경에 구조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해수부의 항적 분석에는 배가 기운 시점이 오전 8시 49분으로 나타나고, 제주VTS에 조난신고는 오전 8시 55분에 이뤄졌으므로, 조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오전 8시30분쯤 이미 이상이 발견됐다는 뜻이다. 일부 승객들이 “(사고 전) 아침 식사를 먹는 중 배가 기우뚱했다”고 말하기도 해 이것이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승객 구호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이나 더 있었다는 뜻이어서 선원들의 사법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해운사의 책임 추궁을 우려해 복구작업을 우선시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선장 이씨는 “두번째 5도 변침을 하는 과정에서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30도 이상 급격하게 기울어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해 구조 요청을 먼저 하고 자체 정상화 작업을 했다”며 엇갈린 주장을 했다.
이들의 증언은 침몰 원인을 변호사에게 털어 놓는 수준이라 증거 능력이 있는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는 물론 다르다. 또한 결국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은 합동수사본부의 몫이지만 최종 결론은 침몰한 선체 인양 뒤에나 가능해 앞으로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조타기 고장 등 선체 문제도 살펴보는 중이고 조타기 공급 업체도 이미 압수수색 했다”며 “앞으로 집중적으로 살펴볼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지만 국민적 관심사인 세월호 침몰의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어 찾아 갔는데 의외로 성의껏 답변해줬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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