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가 자체감사에서 선박 안전검사기관인 한국선급(KR)이 안전 규칙을 어긴 사실을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KR는 2월 세월호가 안전하다고 심사해준 기관으로 역대 회장 11명 중 8명이 해수부 출신인 탓에 정경유착 의혹을 받고 있다.
해수부가 2011년 10월 KR를 감사하고 만든 ‘자체감사 처분요구서’가 23일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수부는 10월 31일부터 열흘 동안 감사관 6명을 동원해 모두 9건의 잘못을 찾아냈다. 그러나 처벌은 모두 시정, 주의, 경고 등 경징계에 그쳤다.
적발된 규정 위반 중 선박 안전 관련이 3건이나 되는 등 심각한 사안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KR는 해양사고에 대응해 ‘선박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규칙을 어겼다. 화재나 좌초 등에 배가 부서지거나 인명피해가 나면 위원장이 판단해 ‘선박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하고 위원회는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선박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KR는 2011년 7건의 대형 해양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단 1번만 위원회를 열었다. 그 해 9월 발생한 ‘현대 설봉호 사고’의 경우 배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객 130명이 죽을 고비를 넘긴 사고였지만 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징계는 ‘주의’에 그쳤다.
KR는 또 검사 부실로 출항 못한 선박을 재조사하지 않았고 선박회사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개선한 내용도 제대로 전산체계에 기록하지 않았다. 이 역시 경징계에 그쳤다.
이에 대해 감사실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처벌이 약한지 말하기는 곤란하다”면서도 “가장 약한 징계를 내린 것은 맞다”고 답했다.
더 심각한 점은 정부가 KR를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KR가 공공기관이 아니라 순수한 민간단체, 사단법인인 탓이다. KR와 선박안전기술공단(KST)는 현행법에 따라 정부를 대행해 국내 모든 선박을 검사한다. 그러나 해수부는 대행기관에 대한 감사권만 있고 징계권은 없는 실정이다. 결국 해수부는 KR에 징계를 내리는 대신 “관련자에 대하여 ‘경고’조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부탁해야 했다. 지적사항 두 개는 ‘통보’ 조치했다. KR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 것이다.
정부는 대행기관을 바꿀 수도 없는 처지다. KR와 KST만 검사 기술을 가진 탓이다. 공공기관인 KST는 통상 어선 같이 작은 배를 주로 담당한다. 대형선박 검사는 사실상 KR가 독점하고 있는 셈인데, 고삐 풀린 KR에게 국내 대형 선박의 안전이 달려 있는 것이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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