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민권운동의 상징인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금지시킨 주법에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보수화로 소수계 보호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는 가운데 나왔다. 소수인종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백인 역차별 논리에 밀려나는 미국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다.
미 대법원은 22일 대학입시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한 미시간 주법에 대해 찬성 6, 반대 2, 기권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 보수 대법관 4명과 중도보수파인 앤서니 케네디, 진보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이 합헌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이 소수계 우대정책 자체를 위헌으로 판단한 건 아니다. 다만 미시간주가 2006년 주민투표란 민주적 절차로 주헌법을 개정, 우대정책을 금지시켰다면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정책의 존폐에 대해 주정부가 주민동의를 얻어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게 대법원의 주문이다. 1960년대 민권운동으로 태어난 우대정책을 금지하는 법이 각 주로 확산될 수밖에 없어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현재는 미시간과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등 8개주가 이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예상보다 많은 대법관이 합헌으로 기운 것은 백인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미국 인구구성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미국 통계국은 신생아 비율에서 백인이 이미 절반 이하로 내려왔고, 향후 5년내에 18세 이하 연령층에서 소수계가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 입시에서 소수인종을 할당제로 우대하지 않아도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보수진영의 주장이다. 중도파인 케네디 대법관도 “주민들이 투표로 차별과 우대를 금지시킬 권한이 있다”며 피부색에 근거해 우대하는 것이 불이익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우대정책이 대학입학 합격 요인이었다고 인정한 두 대법관 중 흑인 클래런스 토머스는 합헌, 히스패닉계인 소니아 소토마이어는 위헌으로 의견이 갈렸다. 특히 소토마이어는 소수의견에서 “내 인생에 문을 열어준 게 이 정책”이라며 “사회에 엄존하는 인종불평등이 사라지길 뒷짐지고 기다려선 안 된다”고 동료 법관들을 질책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보수화 논란을 더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작년 6월에 이미 텍사스주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대해 백인을 역차별해 평등권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대법원은 소수계 선거권 제한을 막기 위해 1965년 제정된 투표권리법을 개정할 때 연방정부 허락을 얻도록 한 것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종신제인 대법관의 구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어 이런 추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폐지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흑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시간대학의 경우 금지법 시행 이후 2009년 6.12%이던 흑인 입학비율이 지난해 4.82%로 급격히 떨어졌다. 히스패닉계는 4.97%에서 4.47%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재미동포(한인)들은 소수인종 가운데 성적이 높아 할당제로 운용되는 우대정책이 대학 입학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을 해왔다. 이번 결정이 한인 학생들의 불이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한인사회는 보고 있다.
▦키워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미국에서 흑인을 우대해,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려는 조치 중 하나로 시작됐다. 소수인종을 제도적으로 우대해 사회적 불평등을 빨리 상쇄하자는 취지다. 소수인종 우대정책, 긍정적 차별로 불리지만, 다수에 대한 역차별이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처음 시행됐으나 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의 행정명령 때 지금과 같은 대학입학, 고용 분야에서 소수 인종, 종교, 국적자에 대한 우대의 의미로 확대됐다. 세계 각국이 차별철폐,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이를 도입했는데, 한국에는 탈북자, 농촌출신 학생 우대조치가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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