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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뇌·눈물… 영웅물 법칙 깬 '멜로 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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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뇌·눈물… 영웅물 법칙 깬 '멜로 버스터'

입력
2014.04.2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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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블록버스터, 특히나 초인적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의 후반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도 반감은 없다.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인공의 성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는 허구를 그리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딘 영화다. 정의를 앞장서 실현하는 영웅의 활약보다 사랑에 설레고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인간’ 스파이더맨의 면모에 더 초점을 맞춘다. 영웅을 중심으로 내세운 블록버스터로는 이례적이다. 액션과 로맨스를 적당히 버무려 무난하게 만들어지기 마련인 블록버스터로는 드문 성취다. 마음이 절로 가는 이유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으로 문을 연다. 핵물질을 탈취한 악당이 트럭을 몰고 미국 뉴욕 번화가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층빌딩 숲 사이를 활강하듯 이동하며 악당을 저지하는 스파이더맨 피터(앤드류 가필드)의 경쾌한 액션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피터는 간단히 악당을 제압하고 고교 졸업식에 참석해 연인 그웬(에마 스톤)에게 키스를 선사한다. 화려하면서도 달콤한 서두다.

시작은 유쾌하나 피터는 곧 갈등과 고뇌와 위기에 빠져든다. 첫번째 난관은 사랑이다. 그웬을 미치도록 사랑하지만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그웬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기만 하다. “그웬을 위해서 그녀를 멀리 하라 ”는 그웬 아버지의 유언이 피터의 발목을 잡는다. 그웬은 그런 피터가 야속하다. 두 남녀의 이별 결심이 관객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웬을 향한 마음이 변치 않은 상태에서 피터는 부모님의 행방에 대한 의문도 풀려 한다. 두번째 장애는 친구다.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오스코프사의 후계자이자 어릴 적 친구였던 해리(데인 드한)와 해후하나 기쁨은 잠시다. 유전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해리가 스파이더맨의 피를 원하면서 친구는 피터의 새로운 위협이 된다. 갈등과 고뇌가 겹겹이 쌓여갈 무렵 피터에 맞설 새로운 악당이 탄생한다. 피터의 열렬한 팬이었던 맥스(제이미 폭스)가 뜻하지 않게 전기 사고를 당해 괴력을 가지게 된다. 맥스는 피터에 대한 오해를 복수심으로 불태우며 해리와 손잡고 뉴욕과 피터를 위기에 빠트린다.

간략한 줄거리로만 보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그저 그런 영웅물로 비친다. 정의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 악당을 처치한 뒤 연인의 마음을 얻고 세계까지 구하는 식의 뻔한 이야기 전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기존 영웅물이 갔던 길을 거부한다. 영화는 절정에서 초인적 영웅을 다룬 영화들이 지켜온 법칙을 무너뜨린다. 달콤했던 사랑은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된다. 피터는 커다란 상실을 거치며 진정한 어른과 영웅으로 거듭난다.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는 여럿 있다. 감성으로 충만한 연출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으로 로맨틱 코미디와 영웅 액션물의 결합을 보여준 마크 웹 감독은 좀 더 능숙한 연출 솜씨를 선보인다.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피터, 그런 피터를 조용히 껴안는 그웬의 모습은 여느 사랑 영화 못지 않은 낭만을 선사한다. 피터의 눈물을 쏟게 만드는 비극적인 장면에선 서글픈 멜로 영화를 연상하게 된다. '멜로 버스터'(멜로+블록버스터) 또는 '500일의 스파이더맨'이라 불러도 무방할 영화다(웹 감독은 2010년 개봉한 로맨스영화 '500일의 썸머'로 명성을 얻었다). 록과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등장 인물들의 정서를 전하는 음악에 귀가 즐겁다. 타임스스퀘어 등 뉴욕 명소를 배경으로 물량을 아끼지 않은 장쾌한 스펙터클이 눈을 만족시킨다.

애절한 사연을 딛고 일어선 피터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수도승처럼 사랑을 멀리하며 오로지 정의구현에만 힘을 쏟을 것인가, 가슴에 새겨진 아픔은 과연 그의 삶에 얼마나 짙은 어둠을 드리울 것인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후속편을 기대케 하는 비범한 속편이다. 2012년 새롭게 출발한 이 시리즈의 성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23일 개봉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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