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직원 행세를 하며 투자금을 받아 고객에게 손실을 입혔다면, 이를 묵인한 증권사에게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H증권이 문모(48)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회사는 문씨에게 11억8,900만원을 갚아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S증권 과장이던 임모씨는 2007년 8월 회사를 퇴직하고 지인인 이모씨가 지점장으로 있는 H증권 덕수궁 지점에서 차장으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임씨가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달라”며 문씨로부터 56억원을 받은 뒤 지시를 어기고 위험성이 높은 선물 옵션 등에 투자해 투자금 전액을 날리면서 발생했다.
이후 문씨는 “임씨가 H증권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도 객관적인 지휘, 감독관계가 있어 사용관계가 인정된다”며 H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이에 H증권은 “손해배상할 채무가 없다”며 문씨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H증권은) 임씨에게 지점 내에 사무실 등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임씨를 ‘차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왔으며, 본부장도 임씨가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것을 묵인한 점 등을 볼 때 증권사는 임씨의 사용자로서 문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투자과정을 꼼꼼히 챙기지 않은 문씨의 과실 등을 참작해 H증권에게 11억8,900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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