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종사자)의 산업재해보험 가입 의무화가 사실상 무산 위기에 처했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설계사 등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이 실효성이 없고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의결에 실패했다. 24일 심사소위가 다시 열리지만 재논의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날 국회에서는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실효성 여부가 쟁점이 됐다. 현행법상 특고 종사자(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래미콘기사, 골프장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는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지만 예외 조항을 둬서 본인이 원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44만여명의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9.2%로 미미하다. 특히 전체 특고 종사자의 약 80%(33만명)를 차지하는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8%대에 불과하다. 보험사가 산재보험을 대신해 설계사들에게 들어주는 단체보험 가입률은 10%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설계사 대부분이 단체보험이나 개인 상해보험 등에 가입돼 있다”며 “산재보험이 단체보험보다 보상수준이 더 낫다는 근거가 없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 측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사망 시 최고 11억원을 지급하지만 민간보험은 일시금으로 최고 1억원만 지급한다”며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맞섰다.
보험사들은 산재보험 의무화 무산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업계는 그 동안 비용부담이 늘고 설계사를 근로자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에 반대해왔다.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면 등록해놓고 활동하지 않는 설계사 산재보험도 회사가 들어줘야 한다”며 “비용 부담이 늘면 자연스레 조직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가입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설계사들이 근로자로 인정 받으면 노조도 결성할 수 있어 업계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최근 보험설계사 8만여명이 집단적으로 의무화 반대 서명을 했지만, 보험사의 강요에 떠밀린 결과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설계사들도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오세중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회사와 계약을 맺을 때 ‘산재보험 적용예외신청서’를 쓰는데 이를 잘 모르고 서명하는 설계사가 대부분”이라며 “복지는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보험사들 반대 배경에는 산재보험의 민영화를 노리는 부분이 크다”며 “민간보험은 산재보험에 비해 현저히 보상범위가 좁아 사회안전망으로 부적절한 만큼 특고 종사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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