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가급적 노출을 꺼려온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잇따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권력이 갈수록 커지고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집단지도체제가 위협받으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행보란 해석이 나온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장 전 주석과 후 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2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라칭창(羅靑長) 전 중국공산당 조사부장의 장례식에 화환을 보냈다. ‘홍색 간첩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 전 부장은 인민해방군 정보 분야의 원로다.
이에 앞서 장 전 주석이 지난 20일 양저우(揚州)의 서우시후(瘦西湖)에서 부인과 함께 뱃놀이를 즐기는 장면도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퍼졌다. 장 전 주석 부부는 황룡 조각이 새겨진 ‘잉빈(迎賓)호’를 다른 10여명과 함께 타고 호수 등을 유람했다. 당시 뱃머리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목격됐으나, 현장에서 특별한 교통 통제는 없었다.
후 전 주석도 지난 9일부터 후난(湖南)성을 방문,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옛집과 펑황(鳳凰)고성 등을 찾은 사실이 큰 관심을 끌었다. 후 전 주석은 17일에도 구이저우(龜州)성 퉁런(銅仁)시를 방문한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 이 밖에도 우방궈(吳邦國)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이 3일 베이징의 한 도교 사원을, 자칭린(賈慶林) 전 정협 주석이 16일 베이징의 한 농장을, 리창춘(李長春) 전 상무위원이 19일 허난(河南)성의 소림사(少林寺)를 찾는 등 전직 상무위원들의 동정도 잇따라 나왔다.
이처럼 전직 주석과 상무위원들이 보란 듯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선 것은 최근 시 주석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겸 정법위 서기를 겨냥한 반부패 투쟁의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저우 전 서기의 사법처리는 전직 주석들도 묵인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소식통은 22일 “시 주석 취임 이후 권력이 시 주석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어 후 전 주석 당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집단지도체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반부패 투쟁을 통해 부패 관료들을 내 쫓고 그 자리를 자기 세력으로 대체하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은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심화국방군대개혁영도소조,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영도소조 등을 출범시키면서 조장까지 맡아 이를 장악한 상태다. 기존 조직과 인력에 개혁을 맡기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예 새 기구를 만든 것이다. 시 주석은 이어 지난 15일 중앙국가안전위원회를 처음 열고 ‘정치안전’부터 경제안전, 문화안전, 핵 안전까지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중국 지도부의 집단지도체제가 막을 내리는 형국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 과오 등 독재의 폐단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뒤 당 내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협상으로 지난 20여년간 작동했다. 한 외교관은 “현 7명의 상무위원 중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한 5명은 2017년이면 연령 제한으로 교체될 수 밖에 없고 시 주석에게 대항할 만한 세력도 없어 시 주석의 권력 집중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라며 “시 주석이 20년 가까이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없잖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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