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았다. 저녁에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열어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정신 없이 뜯어보니 겉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써 있는 걸 보고 (아들)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않단 말인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만 같다.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밝은 해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너를 이 세상에 머물게 두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지금 내가 살아 있은들 장차 뉘게 의지한단 말인가. 부르짖으며 슬퍼할 뿐이다. 하룻밤을 보내기가 한 해 같구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유년(1597년) 10월 14일자 난중일기 내용 일부다. 사지를 넘나들며 천하를 호령하던 맹장도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슬픔 앞에서는 목놓아 울부짖는 일개 범부일 뿐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참척의 슬픔에 잠겨 있다. 자식 가진 부모 중 누가 이번 사고를 남의 일로 여길 수 있을까.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10여명의 대학생이 건물더미와 눈 속에 갇혀 사망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꽃 같은 고교생들이 또다시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다.
대형 사고에는 ‘하인리히 법칙’이 따르게 마련이다. 미국 보험사 관리 감독자 허버트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예방(1931)에서 5만 건의 사고를 분석한 결과, 대형 사고가 터지기까지는 평균적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이상 징후가 300건 이상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어느 날 갑자기’ 식의 우연한 대형 사고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역시 수많은 이상 징후와 경미한 사고를 무시해 생긴 인재(人災)다. 4월 16일은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의 신뢰가 침몰한 국치일(國恥日)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사고로 법과 규칙, 매뉴얼을 깔아뭉개고 기본을 무시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리한 선박 증축, 미비한 시설 점검, 무모한 운항, 먼저 도주한 선장…. 하나씩 밝혀지는 사고의 실체를 지켜보는 내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사고 발생 후 정부가 보여준 행태다.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매뉴얼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피해 상황 집계나 구조ㆍ수색 활동 발표조차 수시로 번복하며 오락가락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부처 이름까지 바꾸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거창한 공약이 공염불이 된 셈이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의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직후 유명 아이돌 그룹은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텐가…”라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책임지는 자세다. 중국 은나라 탕왕 때 7년 넘게 가뭄이 계속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정에서 무속인에게 점을 치게 했고, 그 결과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삼아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 때 탕왕은 “백성을 위해 기우제를 지내는데 백성을 죽일 수가 없다”며 “백성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상복을 입고 기우제를 올렸다. 탕왕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남에게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고 천재지변인 가뭄까지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 자신의 맡은 책임을 회피하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졌다. 정부는 사고 수습 후 내각총사퇴라도 단행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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