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리된 옆머리,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가르마. “아빠 머리 이정도면 괜찮지…?”
아빠는 오매불망 기다려온 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빠는 딸에게 이발한 머리를 칭찬받고 싶었다. 딸은 어려서부터 아빠의 단정한 머리를 좋아했다. 그저 딸의 ‘깔끔하게 잘 깎았다’는 칭찬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생전 처음 찾은 진도에서 이발소 가기도 마다하지 않은 그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 돌아온 딸은 대답이 없다. 아빠는 쉬지 않고 되물었다. 아빠 머리가 멋지지 않냐고….
아버지 고인식(51)씨는 16일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진도를 찾았다. 배에 탔던 안산 단원고 2학년 딸 해인(17)양의 생사 확인을 위해서였다. 딸의 생환 소식을 기다린 나흘 동안 고씨는 단 한 순간도 딸의 생존을 의심치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 걱정에 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을 채 돌보지 못할 때에도 고씨가 굳이 이발을 했던 것은 아이를 살아서 만날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은 야속했다. 해인 양은 세월호 침몰 4일 만인 20일 오전 선체 수색 중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목포중앙병원에서 만난 그리운 딸은 마치 잠자듯 눈을 감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고씨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모습에 더 마음이 찢어진다”며 “추운 바다에서 구조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떠난 것 아니겠나”며 흐느꼈다.
고씨 가족이 사는 집은 안산 단원고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넓진 않지만 아담한 집에서 고씨 가족은 여느 가족보다 행복했다. 고씨는 단원고의 교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3층 집에서 사랑하는 딸의 등교하는 모습, 군것질 하는 모습, 친구들과 교정을 거니는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곤 했다. 딸을 지켜보는 일은 고씨의 하루 중 몇 안 되는 기쁨이자 취미였다. 사춘기 들어 아버지에게 무심했던 딸도 이런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얼마전부터 자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쁜 애교도 부리기 시작했단다. 고씨는 “이제 막 아이와 더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젠 아이의 얘기를 들을 수 없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씨의 휴대폰이 연신 울려댔다. 차갑게 식은 딸을 마주한 아빠의 휴대폰에는 ‘따님 꼭 살아서 돌아올 거예요. 기운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라는 지인들의 메시지가 연이어 수신됐다. 한 순간도 딸의 생환을 의심치 않았던 아빠는 그들에게 차마 아이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
고씨는 애타게 찾던 딸과 함께 21일 새벽 안산으로 돌아갔다. 안산 단원병원에 마련된 해인 양의 빈소에는 뒤늦게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고씨의 지인들과 친척들이 방문, 아픈 가족의 마음을 달랬다. 고양과 평소 알고 지내던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도 그녀의 빈소를 메웠다.
목포=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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