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부둣가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 있다. 검푸른 바다에 시선을 꽂은 채 두 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않는다. 가만히 다가가 “누굴 기다려요?”라고 묻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린다. 거친 바닷바람에 튼 작은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오빠요. 오빠가 보고 싶어서….”
소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 보인다. 소녀를 닮은 소년이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내 울리는 전화 벨. “여보세요. 나 지금? 바다.” “또 거기 있어?”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도 소녀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여기 있으면 오빠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요.” 소녀의 시선은 다시 먼 바다로 향한다.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벌써 엿새째, 열네 살 소녀 아름이(단원중2)는 팽나무 숲과 흐린 바다 사이 선착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 오빠 조성원(17)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외모에 한창 관심을 쏟을 나이건만, 매서운 바람이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 놓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빠가 봤다면 “어우 귀신 같아!” 할지도 모르는데….
아름이는 수학여행 떠난 오빠가 탔던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 부모님과 함께 팽목항으로 달려왔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거처가 진도 실내체육관에 마련돼 있지만, 아름이네 가족은 조금이라도 빨리 성원군 소식을 듣기 위해 팽목한 휴게실에서 지내고 있다.
세 살 터울의 성원군은 듬직하고 자상한 오빠였다. 올해 1월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를 해 받은 ‘생애 첫 월급’에서 몇 만원을 뚝 떼 아름이와 남동생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부반장이었던 성원군은 부모 속 썩인 적 한 번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우리 오빠는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어요. 한국사를 특히 좋아했고요, 역사 과목은 거의 다 만점이었어요.”, “랩도 참 잘해요. 사실 좀 시끄럽기도 하지만 참 웃겼어요.”, “휴대폰 충전기를 먼저 쓰려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재잘재잘 오빠 자랑을 내놓던 아름이가 말을 멈췄다. 잠시 후 천천히 물었다. “우리 오빠는 언제 올까요?”
성원군은 시커먼 바닷속에 잠긴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로 첫 여행을 가게 돼 들뜬 목소리로 동생에게 전화해 잘 다녀오겠노라고 했던 게 마지막 통화였다. 아름이는 눈물도 말랐는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엄마는 사고 전날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수학여행을 가지 말라고 했어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이라도 할 걸….”
사고 당일 2교시 수업 때 “배 사고 났다던데 너네 오빠 저 배 타지 않았어?”라고 묻는 친구의 말이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 4교시 중간에 엄마가 다급하게 교실 문을 열었다. 버스 안에서 정신 없이 우느라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신을 실은 배가 들어올 때면 혹시나 오빠가 아닐까 걱정돼요.” 간절한 그리움과 조금씩 커가는 불안감에 입맛을 잃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아름이는 절대 지치지 않겠다고 했다. “가까운 산 같은 데 말고는 가족여행을 못 가봤거든요. 오빠가 돌아오면 꼭 같이 놀러 가고 싶어요. 안전한 곳으로.”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