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실종자가 바다에 빠졌다면 저체온증으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이 60분 남짓(수온 10도 기준)이고 배 안에 갇혔을 경우 최대 72시간 버틸 수 있다. 서해 바다는 평온한 겉모습과 달리 조류가 심해 베테랑 잠수요원도 바다 속을 20분 이상 수색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초기대응 미숙으로 구조자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간인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고를 총괄 대응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현장인 진도가 아닌 서울에 꾸려졌고 장비와 인력을 보유한 민간 전문가와의 협력도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에 꾸려진 중대본…전문가 파견 못해
16일 오전 8시58분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지 50분 가까이 지난 9시45분에야 안전행정부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중대본을 꾸렸다. 이후 중대본이 취한 조치는 진도 현장상황실과 팽목항, 서해해경청에 연락관 39명을 파견하고 전남도에 사고수습에 필요한 특별교부세를 지원한 정도였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에 부상자 치료 지원을 지시했지만 현장과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보고만 기다리다 보니 현지 상황 파악은 더뎠다. 초기에 ‘구조자 368명’이라는 잘못된 보고를 받고 사태를 안이하게 파악, 금쪽 같은 시간을 날렸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방재안전학회 관계자는 “세월호 침몰과 같이 초기 대응이 중요한 해양재난의 경우 중대본을 현장에 꾸려 신속한 판단을 하고 중대본부장이 선박뿐 아니라 기상, 해양전문가도 현장에 상주하게 해 발 빠른 구조가 이뤄지도록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11년 미국 북부 해안을 강타한 태풍 ‘아이린’ 발생 당시 미국 정부는 벌목 전문가 250명을 현장에 대기시켜 피해를 최소화했다.
현장에서 구조작업에 집중해야 할 해경 역시 중대본에 각종 현황 등을 보고하고 또 잘못된 발표를 정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등 명령과 보고체계에 집착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민간 인력ㆍ장비 파악도 못해
고급 장비와 인력을 갖춘 민간 잠수부가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투입됐다면 실종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 발생 1시간 30여분만에 세월호가 가라앉을 정도로 침몰 속도가 빨랐지만 해경은 초기 해상구조에만 집중했다. 잠수부를 투입해 선체 진입에 성공한 것은 사고 나흘째인 19일이다.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은 “잠수는 전문 장비가 필요해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며 “수중 전체를 수색하는 데는 민간업자의 수준이 더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구조 작업에 사용되는 탐지장비인 소나와 무인로봇 등의 첨단장비는 대부분 민간업체가 보유한 것들이다.
그러나 현재 재난관리체계는 민간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각기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파악해 협력 대응해야 하지만 관 중심의 재난관리에 익숙한 정부는 민간단체의 활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안행부는 지난해 4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17년까지 ‘국가방재자원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정부와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방재자원 관련 정보를 통합관리 시스템과 연계해 필요한 장비가 적시에 지원되는 체계를 갖추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큰 진전은 없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 재해구호전문가는 “중대본에서 과연 민간이 보유한 구조장비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경험도 없고 계획도 없는 중대본의 무능으로 장비나 전문 인력이 제때 투입되지 않아 구조에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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