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연인을 찾기 위해 침몰하는 세월호로 뛰어 들었다. 여자는 배 안에서 승객들을 구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힘을 합쳐 사람들의 탈출을 돕던 이들은 결국 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5개월 뒤 결혼을 약속했던 김기웅(28)씨와 정현선(28)씨의 마지막 모습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하고 있다.
16일 오전9시, 세월호 3층 로비에 있던 기웅씨는 사고를 직감하고 동료들을 깨웠다. 다급히 선실 밖으로 나왔지만 현선씨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다친 동료를 먼저 선실 밖으로 밀어낸 기웅씨는 다시 바닷물이 차오르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6년간 세월호에서 서비스 업무를 맡아온 현선씨는 배 안에서 승객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극적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그러나 배를 빠져 나오지 않고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19일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현선씨의 빈소를 찾은 40대 남성은 배에서 탈출하면서 두 사람을 봤다며 “현선씨와 기웅씨가 ‘배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을 밖으로 떠 밀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런 참변을 당했다”며 현선씨의 어머니를 붙들고 오열했다.
현선씨의 책임감은 그렇게 강했다. 현선씨 동료들은 “작은 사고에도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불안함에 떨까 봐 모포를 나눠줄 정도로 배려가 깊었다”며 “별명이 ‘정장군’일 정도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리더 역할을 도맡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베테랑 직원인 현선씨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기웅씨는 그런 현선씨와 꼭 어울리는 배필이었다. 인천대 4학년으로 올 가을 졸업을 앞뒀던 기웅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7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청해진해운 소속 배에서 불꽃놀이 이벤트를 해왔다. 최근에는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배 안에서 만난 현선씨와 4년 전부터 사랑을 키워왔다.
기웅씨 어머니는 “현선이는 정이 많고 착해서 놓치기 싫은 신붓감이었다”며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어머니 어머니’하며 얼마나 살갑게 불렀는데…”라며 울음을 삼켰다. 현선씨의 언니는 “동생은 배가 집이나 다름없었다. 현선이 물건이 모두 물에 잠겨 동생을 기릴 유품이 하나도 없다”며 통곡했다.
기웅씨는 19일 인천 길병원에서, 현선씨는 20일 인하대병원에서 각각 영결식을 갖고 인천 부평승화원 봉안당에 나란히 안치됐다. 유족들은 두 고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위해 영혼결혼식 절차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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