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쓸 수 없음을 쓰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쓸 수 없음을 쓰다

입력
2014.04.20 15:30
0 0

일주일에 세 번, 이 지면에 나의 일상이나 생각을 적는다. 고역일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날들. 진도 앞바다에 배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곳의 소식을 뉴스 속보와 SNS를 통해 전해 듣는다. 안타깝고 화가 난다. 하지만 시시각각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늘 그렇듯 해야 할 일을 하고, 만날 사람을 만나고, 또 잘 시간이 되면 잠을 잔다. 그곳에서 타들어가는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어떤 부조리가 얽혀 있는지도 헤아릴 수가 없다. 힐난의 표적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얄팍하고 막연한 분노와 안타까움만으로 내가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얄팍하고 막연한 감정이, 또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막는다. 그곳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나의 시간, 나의 생활에 집중하여 쓸 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내게 주어진 이 작은 지면이 막막하다. 타인의 고통에 육박해 들어갈 용기도 부족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비극을 구조적으로 따져 볼 만한 냉철한 열성도 없으며, 직접적인 경험에만 충실하겠다는 식의 뻔뻔함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어정쩡함 속에서, ‘쓸 수 없음’의 방식으로 나는 진도 앞바다에 간신히 연루되어 있는 것일까. 그래서 겨우 이렇게 쓴다. 바다에 잠긴 배처럼 이 일이 내 망각의 수면 아래로 너무 빨리 잠기지 않길 바라며, 쓸 수 없음에 대해 쓴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