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학 후배가 책을 한 권 보내 왔다. 20세기 언어철학의 대가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평전이다. 요즘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 편승한, 상업적 짙은 서적보다 제대로 된 책을 한번 읽어보라는 권유였다. 본격 철학서가 아니라 생애를 풀어 쓴 평전인데도, 생각만큼 수월하게 읽히지 않았다. 이미 아홉살 때부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로울 때에도 사람은 왜 진실을 말해야 할까’라는 문제를 부여잡고 씨름했다는 이 유대계 천재의 삶은 기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문제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했다는 소식이 어느 때보다 솔깃하게 느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트위터 등을 통해 대중과 활발한 소통을 했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소비자 편익 우선과 유통업의 본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던, 소신 있는 재벌 오너가 3세 경영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직접 인문학 강의까지 할 줄 몰랐다. 연세대에서 했던,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강의를 들어보니, 여러모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젊은이들을 채용하면서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골자는 이렇다.
“가뜩이나 없는 돈과 시간을 들여 취업 스펙을 쌓아 놓았더니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라고 하면 짜증날 것 같다. 하지만 놀라운 스펙을 가진 많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지 않고 모범답안을 외우고 와서, 앵무새처럼 똑 같은 대답을 한다. ‘왜’라는 생각 없이 ‘어떻게’ 만 생각하고, 쉽고 빠른 길만을 따라 가려고 한다. 왜 사는가, 무엇이 내 소명인가를 살피는 게 인문학적 성찰이다. 과거에는 기존 정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의 실적 못지 않게 다르게 보고, 깊이 봐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통찰력을 갖춘, 건강한 주관을 가진 차별화된 인재를 뽑겠다.”
기업들은 지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산업화 시대에서 지식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인간의 감성이나 내밀한 욕망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새로운 상품도, 시장 전략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때문에 역사와 철학, 문학, 예술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성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흐름에 불을 댕긴 건 스티브 잡스다. 토익 점수나 자격증 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인재가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식이 인문학 열풍의 한 진원지인 셈이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비등해진 또 다른 이유는 결코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잇따르는 원시적 초대형 사고, 양극화된 사회, 취업과 주거, 노후 등 각종 불안이 겹치면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실용적 목적을 앞세운 인문학은 한계가 분명하다. 인문학은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배워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 필요한 콘텐츠이지만, 당장 돈이 되는 게 아니다. 근본 문제를 제기하는 인문학의 특성상 조급함이나,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번창한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기여할 수 있다. 인문학에 대한 정 부회장의 깊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접근 방식이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청년 영웅’을 선정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런 이벤트식 지원 보다 좀더 간접적 방식이 어떨까 싶다. 대학의 인문학 수업부터 되살아나게 해줄 방안 말이다. 가령 교양과목 수강여부를 취업지원서에 쓰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기업 오너들과 함께 대학 당국자과도 머리를 맞대는 것도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인재를 뽑는 현실적 방법일지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공부해 얻는 효용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개선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설파했다. 이 때의 효용은 당장의 밥벌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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