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흘째인 18일 오전 11시. 진도 팽목항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들에게 시신 세 구를 인양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생존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길 간절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간신히 울음을 집어 삼켰다. 그것도 잠시, 오후 2시쯤 시신이 도착하자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시신은 이날 설치된 팽목항 임시 시신 안치소로 옮겨졌다. 자신의 가족임을 확인한 사람들은 오열했다. 몇몇은 싸늘하게 식은 피붙이를 말 없이 바라보다 실신하기도 했다. 인양된 시신은 목포중앙병원, 세안종합병원, 목포기독병원으로 옮겨졌다.
세안종합병원으로 옮겨진 전종현(71)씨의 시신은 사고 지점에서 100m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됐다. 전씨는 60~70대 자전거 동호회 회원 5명과 함께 제주 올레길로 자전거여행을 떠나려다가 변을 당했다. 동호회원으로 함께 여행 온 신영자(71ㆍ여)씨는 전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살아서 보자 약속했는데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회원들을 잘 인솔하던 책임감 있는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전씨의 아들(38)은 “아버지께선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라며 “참전 후 마지막 군 복무시절을 보냈던 마라도에도 다시 갈 수 있게 됐다며 설레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에 따르면 전씨는 사고 당일인 16일 오전 9시 10분쯤 “배가 기울고 있다”며 부인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렵게 연결된 마지막 통화는 16초 만에 끊어졌다. 아들 전씨는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같은 시각 세안종합병원에선 장지용(17)군의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의 오열이 이어졌다.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학생인 장군은 나쁜 짓 한 번 한 적 없는 모범생이자 효자였다. 장군의 부모와 죽마고우로, 어려서부터 그를 봐왔다는 A씨는 “지용이처럼 착한 아이를 데려가시다니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군의 시신은 바로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16일 오후 진도 인근 사고 현장 근처에서 발견돼 17일까지 박성빈(17)양으로 언론에 잘못 알려졌던 전영수(17)양도 신원이 확인돼 이날 오후 목포중앙병원에서 경기 안산고려병원으로 이송됐다. 외모가 박양과 흡사하다는 소식에 17일 오전 박양의 지난해 담임 교사와 박양의 부모가 목포중앙병원으로 달려왔다가 박양이 아님을 확인하고 되돌아 갔었다.
박양의 가족은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진도로 돌아갔지만, 전양의 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목포중앙병원에 도착했다. 차갑게 식은 채로 가족 품으로 돌아온 전양은 딸 셋인 딸부잣집 막내였다. 오후 6시 목포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아이고 영수야, 어쩌니”하는 어머니의 애끓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니가 딸들의 손을 잡고 흐느끼며 “이제 간 사람은 잊어야지. 남은 사람이 잘 살아야지”고 말하자 두 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물을 터뜨렸다.
김연경(17)양의 시신은 목포에서 안산을 왕복한 뒤에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전날 시신 확인 과정에서 김민지(17)양으로 알려져 18일 안산 한도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지만 시신 안치 과정에서 유족들이 ‘우리 딸이 아니다’라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양의 시신은 다시 ‘성명미상’으로 목포기독병원에 안치됐다가 뒤늦게 달려온 오빠와 친구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됐다. 지인들은 어이 없는 일에 가슴을 치면서 안산산재병원으로 김양의 시신을 옮겼다.
목포=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