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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스마트폰 2년이면 고장?... 행복을 위한 조작된 낭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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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스마트폰 2년이면 고장?... 행복을 위한 조작된 낭비인가

입력
2014.04.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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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사회] /2014-04-18(한국일보)
[낭비사회] /2014-04-18(한국일보)

<낭비 사회를 넘어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ㆍ정기헌 옮김

민음사 발행ㆍ144쪽ㆍ1만2,000원

[경제가 성장하면] /2014-04-18(한국일보)
[경제가 성장하면] /2014-04-18(한국일보)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

데이비드 코튼 지음ㆍ김경숙 옮김

사이 발행ㆍ448쪽ㆍ1만8,900원

성장은 소비를 먹고 자란다. 소비 없는 사회에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이의 크기를 불리는 데만 집착하는 사회는 화수분 같은 소비 욕구 없이 지탱할 수 없다. 하지만 마르지 않는 인간의 욕구, 소비 집착에 기댄 성장은 번번이 실패해 왔다.

영국은 1980년대까지 30여년 동안 굽히지 않는 성장 위주 정책을 펼친 덕에 국민소득이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범죄율은 8배나 증가했다. 소수의 주머니가 두둑해졌지만 대다수의 행복은 날아가 버린 셈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허상에 대한 반성은 탈성장주의 열풍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세계적인 탈성장 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 파리 11대학 교수, 그리고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서 아시아 지역 성장 관리를 책임지다 성장 위주 정책의 그늘을 깨닫고 역시 탈성장주의자로 돌아선 데이비드 코튼 박사가 발전지상주의의 허상을 지적한 책을 각각 출간했다.

라투슈 교수의 <낭비 사회를 넘어서>는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를 끝없이 독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산업화 이후 기업들이 저지르는 ‘계획적 진부화’를 고발한다. 종종 우리는 전자제품에 의도적으로 입력된 수명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가진다. 스마트폰은 약정기간이 끝나는 2년을 넘기기가 무섭게 급격히 성능이 떨어지고 고장 수리를 할라치면 “고치느니 새 제품을 사는 게 유리하다”는 답을 듣는다. 누구의 계략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의 급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신제품을 구입한다. 언제부터인지 백색가전은 10년, 휴대폰은 2년이라는 평균수명이 고착화했고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이 주기에 맞춰 새로운 소비를 이어갔다.

책은 신속한 소비를 끌어내 빠른 성장을 이루려 제품을 노쇠하도록(진부하도록) 제작단계부터 프로그래밍하는 ‘계획적 진부화’야 말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현대 성장주의의 상징이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현대의 정부들은 연금을 더 지급하고 높은 수준의 공공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생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며 “이를 위해 동원되는 것이 점점 더 많이 소비하도록 하는 계획적 진부화”라고 설명한다. 라투슈 교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는 생산량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군대를 앞세워서라도 해외시장을 개척하려 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이 같은 풍조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소비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됐다”고 판단한다.

책이 밝혀내는 ‘계획적 진부화’의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프린터의 수명을 제한하기 위해 인쇄 매수가 1만8,000장이 넘으면 자동 멈춤이 이뤄지는 칩을 심었다거나, 마모되지 않는 면도날 특허를 소유한 기업이 이를 생산하지 않고 포기했다는 것이 사례들이다. 책에 따르면 1924년 미국에선 전구 제조사들이 전구 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는 일종의 담합을 이뤘다. 초기 생산된 나일론 스타킹은 자동차 한 대를 끌 정도로 장력이 뛰어났지만 현대의 생산품은 손톱이 스쳐도 끊어질 정도다. 저자는 이 모든 게 소비 촉진을 위한 자본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탈성장 혁명을 통해 계획적 진부화를 막지 않으면 자본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자연과 개인이 받아내야 한다”고 책은 경고하지만, 계획적 진부화로 대표되는 성장주의가 비윤리적이라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넉넉한 고용, 이를 통한 사회 안녕을 유지하는 역할도 만만치 않아서다.

코튼 박사의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는 라투슈 교수의 책과 달리 보다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에서 성장위주 사회의 문제를 조망한다. 그는 미국의 전형적인 보수적 백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장주의의 표준인 미국식 번영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다. 하지만 USAID에서 8년 동안 근무하던 그는 ‘약자에게는 빈곤으로, 강자에게는 경제성장’으로 나타나는 경제 세계화의 이중구조를 파악하고 탈성장주의자로 변신했다. 저자는 파이를 키워 독점하는 부유층의 행태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번져갔던 식민 제국주의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세계화의 탈을 쓴 세계적 규모의 독점이야말로 제국주의자의 모습이란 얘기다. 과거의 제국이 총알과 밧줄로 약자를 위협했다면 성장의 과실을 모두 가로채는 현대의 부국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워 빈곤한 채무국을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경제 성장 프레임의 폐해를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빈국, 나아가 평범한 ‘우리’가 겪는 고통을 치유할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이로써 저자는 경제 세계화 체제를 대체할 지역 공동체의 자립 시스템을 거론한다. 세계화보다 지역화에 방점을 찍은 이 시스템을 저자는 “총의 혁명이 아닌, 사고의 혁명”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문화적ㆍ생물적 다양성의 장려가 성장의 열매가 한 곳으로만 유통되는 구조를 뜯어고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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