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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쟁명(百花爭鳴)의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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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쟁명(百花爭鳴)의 봄날에

입력
2014.04.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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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이 봄꽃 축제 날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다. 대개 봄꽃 피는 날이 대략 맞았기에 평년의 여러 사례들을 평균 잡아 날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늘 같지는 않다. 봄꽃이 피는 순서는 그해 겨울과 봄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동해안에서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 중부지방은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내륙지방은 개나리, 매화, 진달래, 벚꽃 등의 순서로 피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래도 대략 벚꽃, 개나리, 진달래의 순서로 핀다. 그런데 올해는 그 순서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에 피는 수수꽃다리(흔히 라일락이라 부르는)도 이미 활짝 펴서 골목길 접어드는 바람결에 진한 향으로 다가온다. 예년처럼 이게 피고 나서 저게 피는 식의 봄꽃의 릴레이는 적어도 올해는 실종된 모양이다. 순서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앞다투어 피는 것 같다. 이쯤이면 가히 백화쟁명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판이다.

자연에 사람이 맞추고 따르는 것이지 사람에 자연이 맞추는 게 아닌데도 우리의 습성은 자연이 늘 규칙적으로 순환하기에 제 짐작에 따라 자연이 우리의 시간표에 따르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올해 개화 시기의 비 예측성에 적잖게 당황하고 허둥대는 모습이다. 자연은 불필요한 낭비가 없고 엉뚱한 반응도 없다. 우리 눈에는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연으로서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행동이다. 질서라는 게 꼭 숨 막히게 엄격하고 바튼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 순환이고 예측하여 대비하고 누릴 수 있는 바탕일 뿐이다. 그런데도 학습된 결과로, 그리고 자기중심적 사고의 습관 때문에 모든 것이 그 질서의 틀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차례 슬쩍 무시하고 ‘제멋대로’ 엉켜 피는 올 봄꽃들은 어쩌면 우리의 그런 습성에 대한 따끔한 경고요 일침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 시대의 오만함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틀 속에서만 해석하고 행동하려는 그릇되고 사악한 생각에서 싹트고 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윽박지르고 자신은 온갖 탈법과 위헌을 자행하면서도 일고의 부끄러움이나 반성도 없다. 심지어 조작과, 권력과 금력에 대한 도에 넘치는 아부와 눈치 보기에도 태연할 뿐 아니라 외려 멀쩡한 이들에게 덤터기까지 씌우려 든다. 정의마저 그 의미를 상실해서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세상의 법칙이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평소의 차례를 어기고 한꺼번에 터지는 봄꽃은 어쩌면 곧 있을 선거판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뒤엉켜 피는 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향기도 예쁘다. 그러나 이전투구와 후안무치, 파렴치와 적반하장 등의 추태를 보이는 자들의 행태는 패악스럽고 악취만 진동시킨다. 봄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잠시 꽃들이 제 순서 놓친 것으로도 줄지 않는다. 사람들이 제 향기를 되찾는 것이 필요한 봄이다. 백화쟁명의 아우성은 어쩌면 어설픈 농간과 허접한 속임수로 협박과 왜곡 일삼는 자들 이참에 본때 보여주라는 경고요 다짐은 아닐까?

개나리, 벚꽃, 진달래만 있는 게 아니라 예쁜 풀꽃도 만발했고 미선나무, 히어리, 명자꽃에, 성미 급한 홍매까지 나섰다. 화려한 꽃들의 ‘명성’에 가려 존재감조차 모르게 지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곧이어 모란, 정향나무, 팥배나무, 해당화, 이팝나무, 찔레꽃, 조팝나무, 층층나무 등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즐비하게 이어질 것이다. 그 꽃들에게도 걸맞은 눈 맞춤을 해야 할 때이다. 주말에는 개심사 왕벚꽃이 제대로 다 피었는지 가봐야겠다. 그리고 배롱나무 이른 소식까지 전해지면 담양 명옥헌 배롱나무들의 장한 모습 보러 모처럼 먼 길 소풍이나 떠나볼 참이다. 평소 꽃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나로서는 스스로도 낯선 꽃 타령이다. 정신줄 놓은 계절 탓인지, 혼탁한 세상 꽃으로라도 정화해야만 조금 숨통이라도 트일 것 같은 세상의 요지경 때문인지 헷갈리는 봄이다. 백화쟁명의 이 봄.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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