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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가득한 자리에서 아이들 살아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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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가득한 자리에서 아이들 살아남게 하소서"

입력
2014.04.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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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꽃이 피어있고 사과꽃이 피어있는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저 캄캄한 바다에 갇혔으니 잔인하고 잔혹한 한국의 어른들이 우리가 아닌가. 배 안의 학생들이 어른거리고 우울하기만 했다. 얼마나 또 사람이 죽고 울분을 터뜨리고 비명을 질러야 우리가 깨어날까.

이 끔찍한 상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어른들로 앳된 아이들만 희생되고 있으니 통절한 슬픔만 들끓는다. 배가 27도 이상 기울면 무조건 탈출하는 것이 상식이라는데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 들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기본 안전교육조차 하지 않은 어른들의 치명적 실수다. 지금 중요한 것이 잠수부 투입이지만 기상악화 구조 지연이란 뉴스가 떠서 암울하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작년에 딸이 내 품을 떠나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을 때가 생각났다. 혹시 비행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괜찮을까 참 많이 염려했었다. 어느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천재지변보다 부주의와 소명의식의 결핍으로 인재사건이 많지 않았던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과 불과 두 달 전의 마우나리조트를 뼈아프게 기억한다.

참사를 몰고 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먼저 줄행랑을 쳐서 절망과 경악감을 던져주었다. 꽃도 못 피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한 정부, 권력이나 누리려 할 뿐 양심과 죄의식을 망각하기 일쑤인 지도층, 또 다른 뉴스가 밀어버리면 금세 잊는 한국의 어른들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실수투성이의 미숙함을 보여줬다.

페이스북에는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도만큼이나 무력감과 허무, 자조적인 통탄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가가 무엇이며, 현대문명의 진보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했나 질문해 본다. 깨어 사는 마음의 훈련이 없으면 자신의 생명조차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위기에서도 굳건히 살아남게 지혜의 훈련까지 해야 함을 깨닫는다. 더불어 인생의 목표, 가치, 사랑과 물질의 나눔까지 진정한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이 있어야 하겠다.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하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단원고 정차웅군의 뉴스에 참 많이 울었다. 점점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애가 탄다. 하지만 배가 뒤집혔을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가 선내 일부에 남아 있는 에어포켓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불안에 떠는 자리에서, 더는 잃어버릴 게 없는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살아내야 할 자리에서 나약하고 유한한 모습을 마주하며 비바람처럼 흐득입니다. 벌거벗고 상처 가득한 자리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이 살아남게 하소서. 누구도 외면치 않고 에어포켓으로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돌아오게 하소서.’

나의 이 기도는, 설사 무력한 사람의 외침이고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는 자의 허망한 뇌까림일지라도 아이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랑의 약속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연이고 사랑이라 생각하면 1분 1초가 비단결이다. 사랑하는 아이와 사람들과 있을 때 거듭 다시 내가 태어남을 알기에 부모들 심정을 헤아리며 캄캄한 바다 속에서 죽음의 위기 속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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