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좋아. 소리. 섬 집 아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은(18ㆍ여) 이는 최근 말수가 부쩍 늘었다. 고개를 숙이고 혼자 웅얼거리기만 했던 아이가 당당하게 사람들의 눈을 보며 짧은 단어로나마 의사 표현을 한다. 2012년 11월 밀알첼로앙상블‘날개’에서 첼로를 켜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다. 내친김에 17일 오전 11시 서울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열린 ‘밀알 콘서트’에 올라 활을 잡았다. 장애를 깨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눈부신 무대가 이날 펼쳐졌다.
밀알복지재단이 이날 주최한 ‘밀알콘서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만든 특별한 공연이었다. 자폐, 지적장애, 발달장애를 가진 28명의 청소년이 모인‘날개’의 연주를 시작으로, ‘날개’와 첼리스트 김규식씨의 협연과 4명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합창단 ‘소리보기’와 비장애 어린이의 합창이 이어졌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기획된 밀알콘서트는 이날로 11주년을 맞았다.
기침 소리도 허락되지 않는 엄숙한 공연과 달리 여기저기서 고함과 박수, 말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이 공연의 특징. 자리를 가득 메운 450명의 관객 중 일부도 장애를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장애통합어린이집인 서울 중구 중림어린이집의 양영희(54) 원장은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공연장에서 돌연 고함을 지르거나 울기 때문에 마음 놓고 공연장에 가지 못한다”며 “밀알콘서트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이날 ‘날개’가 펼친 공연은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와 ‘섬 집 아기’등 두 곡이었다. 10여분의 짧은 곡들이지만 이를 위해 ‘날개’단원들은 지난 2년간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어야 했다.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는 5분도 집중을 못 하고, 자폐 아이들은 협주에 필요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힘들어 한 곡을 배우기까지 1년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공연을 보기는 처음이라는 장혜영(28)씨는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하면 지금까지 접한 어떤 음악보다 더 감동적”이라고 평가했다.
참가자들의 가족들도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형은이의 어머니 김문자(50)씨는 첼로를 켜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아무것도 못 했던 아이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2급 지적장애를 가진 차지후(17)군의 어머니(44)는 이날 공연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는데, “아이를 가르치다 몇 번 반주를 했는데 지휘자의 눈에 띄어 공연까지 하게 됐다”며 “아이와 함께 호흡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고 웃었다.
첼로앙상블 ‘날개’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12년 11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재단 관계자는 “장애 아이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음악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로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다”며 “꼭 ‘장애인의 날(20일)’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공연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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