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학로에서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를 보았다. 이 연극은 1974년 유신정권이 조작한 최대의 간첩사건 중의 하나인 울릉도 간첩단사건 생존자들의 이야기이다. 1974년 3월 15일 중앙정보부는 ‘울릉도 간첩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노동자, 농민, 군 간부 등을 포섭하여 사회불안과 혼란을 조성하여 현 정부를 전복하고 적화통일을 기하라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10여 년간 지하에서 울릉도를 거점으로 간첩활동을 한 대규모 간첩망 일당 47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하였고, 이 사건으로 32명이 간첩죄 등으로 기소되어 그중 3명이 사형을 당하였다. 사건이 있은 지 38년 만인 2012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지금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32명 중 19명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졌고, 나머지 피해자들의 재심사건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중앙정보부로부터 모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했고, 그러한 고문으로 간첩이 되었다. 그로 인해 누구는 사형을 받고, 누구는 17년, 10년을 감옥에 갇혀있었다. 이들은 고문으로 인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했고, 국가에 의해 삶을 철저히 짓밟혀, 살아있으되 죽은 삶,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참혹한 생을 살아야 했다. 국민의 보호하여야 할 국가가 오히려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국민의 삶을 처참하게 빼앗은 것이다.
유신정권은 1974년 3월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터뜨림으로써 폭압 정치에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 하였지만 효과가 없자, 바로 이어서 그해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민청학련 사건)을 터뜨려 250여 명을 체포하였고, 그다음 해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자, 그로부터 18시간 만에 바로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살인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인혁당 사건은 유신정권 최대의 국가폭력사건으로 언론과 사회의 조명을 받고 그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보냈지만, 같은 해에 벌어졌던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조명하지도 않았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을 기억하며 치유의 손길을 건넨다. 연극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의 응어리로 남아있던 그 순간을 드러내놓고 용기를 내어 말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서사 치유극이다. 피해자들은 노년이 되어서야 울릉도 간첩단사건에 관한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을 받고 재판을 준비하면서 인권단체의 치유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명상치유를 시작한다. 40여년 전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던 상황을 재현하며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고문이라는 부당한 국가폭력으로 인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그 후유증을 집단적인 독백으로 외치면서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모진 상처 끝에 돋아난 희망, 상처꽃이 피어난다.
그동안 우리는 조작 간첩사건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 피해자들은 사회에서 외면받고 손가락질받으며 비참한 생을 영위해왔다. 그렇지만 조작된 간첩사건은 우리 사회의 가장 부조리하고 악랄한 치부이며, 가장 억울하게 고통받는 곳이다. 나승구 신부의 말씀대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 억울하고 고통받는 곳이 외면될 때 우리 사회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그 상처를 바라보고 안타까워하고 함께 아파할 때 그 상처는 전체를 살리는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과거의 간첩 조작사건들과 반인권적 긴급조치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하나하나 뒤집히고 있음에도 2014년 현재에도 ‘화교 남매 간첩사건’이 국정원 증거조작을 통해 ‘생산’되고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한과 상처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폭력과 간첩조작은 분단된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이다. 국가폭력에 반대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아파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를 잡으러 왔을 때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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