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참새 둥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참새 둥지

입력
2014.04.16 12:00
0 0

함석 기와지붕 밑으로 참새들이 들락거린다. 둥지를 지을 자리를 물색하느라 분주해졌다. 겨우내 함석 기와지붕 밑에서 잠을 자던 녀석들이다. 며칠 전부터 지푸라기를 물고 와 주위를 살피고는 지붕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어떻게 둥지를 짓는지, 얼마만큼 둥지를 지었는지 궁금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살피고 싶지만 그만두었다. 둥지를 짓는 참새에게 들키면 둥지를 짓는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고 잠을 자러 오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제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참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조심스럽다. 음식을 만들 때도 주방 후드를 켜는 대신 창문을 열어놓고 라디오나 전축도 틀지 않게 되었다. 둥지를 짓는 참새를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인 셈이다.

몇 년 전에 고향에 갔을 때였다. 커피를 마시러 주방에 들어갔는데 냄새 때문에 질식하는 줄 알았다. 주방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근원을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닫혀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주방 후드를 틀었다. 흙가루와 지푸라기들이 주방 후드 프로펠러에 갈려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겁을 하고 주방으로 들어온 어머니가 주방 후드 정지버튼을 누르고 창문을 닫아걸었다. 그러고는 내 팔목을 거실로 잡아끌었다. 주방 후드 안에 새 둥지가 있고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 나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밥도 주방에서 해 먹지 않고 아래채에 딸린 창고에서 해먹고 있다 했다. 너희들 키울 때가 생각나서 까치발을 들고 들어가 새끼들이 입 벌리는 소리를 듣곤 한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 소리를 들으면 밥 떠먹을 때마다 너희들 얼굴이 떠올라서 웃는다. 혼자서 웃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했는데 저것들이 글쎄 중매를 선 것이지 뭐냐. 옛날과 시방을 끈으로 연결시켜주는 녀석들이 고맙기만 하다. 말을 마친 어머니는 내 눈을 바라보고는 마른걸레를 들고 나가셨다.

어느 날 불쑥 찾아간 집에서 어머니의 잠을 보았다. 안방마루에 누워 잠이 든 어머니는 마른걸레를 베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마른걸레를 머릿수건으로 알았을까. 짧은 파마머리와 검게 탄 얼굴이 아프리카 원주민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아래채 굴뚝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참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아래채 대청마루 창문 밖으로 측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곳에서 참새 떼가 잠을 자고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참새들이 어떻게 자는지 궁금해 플래시를 비춰본 적이 있었다. 참새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궁금해 측백나무를 흔든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참새보다 일찍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부모님께 살가운 자식이 못되었다. 내가 먼저 말을 붙인 건 아쉬울 때가 전부였다. 두 분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집 안의 적막을 깨웠다. 새벽부터 시끌벅적 떠드는 참새들의 지저귐이 듣기 싫어 이불을 끌어다 머리 위로 덮었다.

자정 무렵에 귀가한 나는 목조계단 앞에서 구두를 벗어들었다. 구둣발로 데크를 밟으면 지붕까지 진동이 오르기 마련이다. 되도록이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지 않았다. 삐거덕거림이 참새의 둥지 짓는 일과 부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까치발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 새끼들이 입 벌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물 말은 밥을 바닥에서 떠먹으면서 어머니처럼 과거와 현재를 끈으로 잇고 싶었다.

참새들의 지저귐은 새벽에 템포가 가장 빠르다. 한낮이 될수록 느긋해져 템포가 느려진다. 배고픔과 배부름의 차이일 것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날이면 참새의 지저귐은 느슨하게 들려온다.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이 허물어진 지 오래다. 먹고 사는 일을 핑계로 안주한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긴장이 풀리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까치발을 들고 초심의 나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라도 자세를 잡아야겠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먹이를 물어온 어미에게 입을 벌릴 때 내는 간절하고 절박한 내면의 소리를 옮겨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

이윤학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