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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의 f2.8]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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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의 f2.8] 돌담길

입력
2014.04.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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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낭창낭창 휘어져 유채꽃밭을 싸고 있었다. 병아리색 향기가 바람에 묻어 있었다.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서늘했다.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 청산도 당리의 이른 아침. 폭스바겐 골프 한 대가 먼지를 피우며 굴러왔다. 안나수이 선글라스를 쓴 아가씨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운전석에서 나온 청년은 캐논 5D Mark3를 쥐고 있었다. 안개가 끼었지만 하늘은 청명했다. 4월의 아침 햇살이 부드러웠다. 부지런한 젊은 연인은 근사한 사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던 청년이 뭐라도 본 듯, 흠칫했다.

할머니는 올해 여든 넷이라고 했다.

"농사 안 허요, 안 혀. 이제 다 됐지라…5월에, 이놈 걷으재라."

밭에 웅크리고 있는 할머니의 말은 앞뒤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밥에 놓아 먹는 검은콩을 맨손으로 심고 있었다. 밭은 노란 꽃밭 한가운데 딱 자동차 두 대를 주차할 크기만 했다. 유채를 심으면 편히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그 땅뙈기에다 콩을 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볼 계제도 대답을 해줄 형편도 서로 못 될 것이 뻔했다. 이곳에서 영화 '서편제'가 촬영된 게 1993년, 주민들의 수십 년 민원 끝에 길이 포장된 게 1996년, 그게 돌담길 분위기를 망친다고 다시 뜯어낸 게 2001년, 청산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게 2007년…

나에겐 여행지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첫 번째 관광버스가 들어올 무렵, 할머니는 비칠비칠 마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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