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사건의 최종 책임자에게 옐로카드만 보였다. 개인정보 유출사건 당시 국민 탓을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불신을 자초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경고장만 남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향후 더 큰 신뢰의 위기를 부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 체계에 허점이 드러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어제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됐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 표명은 지난해 9월 기초연금 공약 수정과 관련해 사과한 이후 약 7개월 만으로 취임 이후 네 번째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경고하는 데 그쳤다.
전날 서천호 국가정보원 2차장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대국민 사과와 국정원 개혁을 주문하는 선에서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습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남 원장도 이날 오전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중국 화교 유가강(유우성) 간첩사건과 관련해 증거 서류 조작 의혹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머리 숙여 깊이 사과 드린다"고 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수사 관행을 점검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개혁을 해 나가겠다"고만 밝혀 자신의 거취문제는 피해갔다.
그러나 이는 증거조작 사건에서 보인 국정원의 불법적 행태뿐만 아니라 국가기강을 문란케 하는 잇단 거짓 해명 등에 대한 지휘 책임을 국정원 2차장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어서 남 원장의 책임회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날 발표된 검찰의 수사결과도 국정원 3급 직원인 대공수사국 처장 선만 기소하고 윗선 개입을 규명하지 못해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야권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과 남 원장 해임을 강력 요구하고 나서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 원장의 거취가 첨예한 선거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이날 "국정원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기강마저 무너졌다"며 "남 원장을 해임하고 전면적인 국정원 개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국정원 댓글 사건 및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으로 여야가 격렬하게 대치한 데 이어 박근혜정부 집권 2년차에서도 또다시 국정원의 행태를 두고 여야가 맞붙어 정국 경색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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