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경계에는 불안이 서려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죽음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이 집중해 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의 여정에 새겨진 작은 경계에는 작은 불안이 엉겨있다. 사는 동안의 수많은 의례(儀禮)는 불안을 죽이고 경계를 넘자는 다짐이거나 무사한 월경(越境)에 대한 축하다. 백일이나 돌 잔치가 육체적으로 가장 약한 시기를 잘 넘긴 데 대한 축하이고, 성년식이나 결혼식은 사회ㆍ법적 지위 변화를 맞는 다짐 색채가 짙다.
■ 연속성을 상실하는 곳, 질적 변화가 시작되는 곳의 경계는 자연스럽다.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로 바뀌는 고갯마루, 땅이 끝나는 해안선, 탄생과 죽음 등이 그런 예다. 반면 양쪽의 질적 단절이나 확연한 차이가 없는, 수평이나 완만한 기울기의 연장선상에 임의로 설치된 경계는 부자연스럽고 사람을 애타게 한다. 경계 양쪽, 특히 경계에서 가까운 영역은 질적으로 비슷하다. 그런데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천양지차라면, 차별을 정당화할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
■ 어느 대학 입시 예상 합격선이 100점 만점에 90점이라고 치자. 모의고사에서 늘 만점 가까운 학생이나 90점 근처에도 아예 가보지 못한 학생은 편하다. 반면 90점 아래위를 맴돈 학생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입학 시험 결과 각각 90점과 89점을 얻은 학생은 실력 차이는 거의 없어도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판이한 결과를 얻는다. 다만 입시는 정원이 정해져 있고, 수험생 모두 '부당한 차별'에 이르는 결과를 사전에 승낙했기에 사후 불만은 제기되지 않는다.
■ 사전 승낙이 없는 복지문제는 다르다. 흔한 '소득 하위 70%'의 경계 안팎에는 소득이 비슷한 사람이 줄지어 있어 '부당 차별'의 개연성은 커진다. 전국 공통의 수치 기준이 없어 들쭉날쭉한 '등급 심사'는 더하다. 국민연금공단이 3도 화상으로 중태에 빠진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 지원 요청을 거절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경계 획정은 피할 수 없다지만, 실질적ㆍ적극적 대응이 그리 어려웠을지 자꾸 의심스럽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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