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의 간첩 혐의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앞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 청사에서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낡은 수사절차 혁신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강도 높은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남 원장이 쇄신을 약속했지만, 우리는 아주 미흡하다고 본다. 사과와 쇄신은 말이 아닌 단호하고도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정원이 한 사람을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이게 문제되자 이를 덮기 위해 온갖 공작을 벌인 중대하고도 추악한 범죄다. 심지어 국정원은 궁지에 몰리자 중국 내 비밀요원들과 협력자들의 신원을 노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탈북 협력자의 언론 인터뷰까지 주선해 북에 남은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 정의와 인권을 유린한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정보기관의 비밀보호 철칙까지 깨뜨리고 최소한의 의리조차 팽개친 것이다.
이런 국정원에 대해 "재발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무척 안이하다. 남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이미 국민 신뢰를 잃었다. 남 원장은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불거졌을 때 국민의 바람과는 달리 개혁 대신 미봉으로 일관했으며, 그 어느 나라도 하지 않은 정상회담 회의록까지 공개하면서 스스로 정쟁에 뛰어들었다. 국정원의 쇄신이 남 원장의 문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간첩 증거조작 사건도 특검을 도입, 재수사해야 한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3급)의 지시 또는 묵인 아래 과장(4급) 2명과 공모해 간첩사건의 증거를 조작했으며 수사검사들의 공모나 인식도 없었다"는 검찰의 발표를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국가정보기관이 사법체계를 뒤흔들고 헌법정신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을 이렇게 얼버무리고 간다면, 이 나라에 정의는 바로 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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