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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연둣빛 수채화 같은 풍경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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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연둣빛 수채화 같은 풍경 속을 거닐다

입력
2014.04.15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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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선 시간이 안 간다. 여름 오고, 가을 다음 겨울이 와도 사진 속, 꽃 화사한 봄날 풍경은 그대로다. 기억하고 싶은 것, 사진으로 남기는 이유다. 이거 들여다보면 그때의 순간과 정서가 오롯이 살아난다. 전남 화순에 봄 풍경 참 예쁜 곳 몇 군데 있다.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산벚꽃 화사한 세량제, 친근한 얼굴의 석불이 반기는 운주사다. 이곳들 사진 꼭 찍어 둔다. 사는 일이 퍽퍽하다 느껴질 때 꺼내 보면 마음 참 편안해진다. 장쾌한 풍광이 인상적인 적벽(赤壁)은 개방이 논의 중이니 이곳도 메모해둔다.

● 산벚꽃과 신록 눈부신 세량제

세량제는 해 뜨기 전에 간다. 화순 세량리에 있는 작은 저수지다. 산벚꽃 화사한 봄날 이른 아침, 물안개 느릿하게 꿈틀대는 풍경이 끝내준다고 소문난 촬영 명소다. 이러니 ‘출사 좀 다닌다’는 말 들으려면 이맘때 이 예쁜 저수지 한번 찾아가줘야 한다.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칠구재터널 통과하면 저수지가 있는 세량리 마을. ‘세량제 포토존’ 이정표 따라 주차장까지 간 후 차를 세우고 좁은 고샅길로 500m쯤 올라가면 그림 같은 풍경이 슬그머니 등장한다.

흐드러진 산벚꽃, 여백을 메우는 삼나무와 완연한 신록, 고요한 수면의 반영…. 볼수록 눈이 맑아지니, 이거 분명 선계(仙界)의 경치다. 이 섬세한 자연의 솜씨가 사람들 홀렸다. 꽃 피기 기다려, 팔도에서 카메라 들고 달려 온 이들이 벌써부터 제방에 진을 쳤다. 이거 또 볼만한 진풍경이다.

저수지는 1969년 만들어졌다. 2005년쯤 주변에 공원묘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에 사진동호인들이 난리가 났다. 이들이 군청 홈페이지 등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며 저수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요즘은 사진에 별 관심 없는 이들도 호기심에 들른다.

사람들 몰리는 탓에 오래 전 한갓진 분위기 남아있겠냐고 따져 물을지 모를 일이다. 조금 산만한 것은 사실. 그래도 예전 풍경은 어디 안 갔다. 이름 값 하는 곳들 다 젖혀버리면 갈만한 데 어디 있을까. 유명한 만큼 더 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경북 청송의 주산지도, 경남 창녕의 우포늪도 사진동호인들로 제법 북적이는 곳이지만 구경하고 싶은 마음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마음 동하면 굳이 외면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화순 땅의 ‘명물’이니 손해 볼 일 없다. 사진 좋아하면 더 그렇다.

부산스러움은 오래 안 간다. 해 뜨고 한 두 시간 지나면 카메라 든 사람들 대부분 빠져나간다. 저수지는 둘레 도는 데 30분도 채 안 걸릴 규모. 이 때 기다려 저수지 양쪽으로 난 임도 따라 걸어보고(양쪽 길은 연결 안 된다) 제방에 앉아 망중한도 즐긴다. 이 작은 저수지가 퍽퍽한 일상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는 가 봐야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얻은 생채기가 신속하게 아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벚꽃은 이번 주까지 절정이다. 꽃 떨어져도 실망할 필요 없다. 5월초까지 신록 눈부시다. 연둣빛 화사한 풍경도 가슴에 오래 남을 여운을 선사한다. 신록 예쁘면 단풍도 화려한 법. 가을 풍경도 멋지니 잊지 않고 기억해둔다.

● ‘천불천탑’의 운주사

도암면 천불산 자락에 그 유명한 운주사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이 절집에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천불천탑의 절집’이다. 지금 남은 것은 불상 100여기, 석탑 20여기다. 절집 가람들도 당시의 것은 아니고 운주사가 있던 자리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그래도 볼만하다. 경내에 벚꽃까지 흐드러졌고 분홍빛 진달래도 막 꽃을 피웠다.

이곳 석불과 석탑이 볼거리다. 석불은 하나같이 못생겼고 석탑의 모양도 특이하다.

들판, 바위 틈새와 아래, 산 중턱과 꼭대기…. 일주문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석불과 석탑의 등장이 끝이 없다. 절집 에둘러 산책길 잘 나 있으니 길 따라가며 차례로 구경한다.

석불 알현한다. 얼굴은 우스꽝스럽고 팔과 손의 균형은 볼품없다. 몸체에 새긴 옷주름은 또 어찌나 어색한지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수십cm에서 10m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천차만별. 여기에 자세도 볼만하다.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아예 땅바닥에 누웠다. 불상인지, 부처를 기다리는 중생인지 도통 헷갈리는 표정과 자세들. 산재한 ‘돌부처’가 바로 ‘나’ 같으니 이거 참 정이 간다.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못난이 불상’의 푸근한 얼굴 보려고 운주사에 온다. 벚꽃이 이마 위로 살짝 드리우면 석불이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석탑들도 유별나다. 어떤 것은 몸체가 축구공처럼 둥글고, 또 어떤 것은 지붕돌(옥개석)이 조선시대 양반들이 쓰던 갓처럼 둥글넓적하다. 연꽃이나 구름대신 ‘X’ ‘Ⅲ’ 같은 도통 의미 모를 문양이 새겨진 것도 수두룩하다. 어느 절집에서도 못 볼 기이한 것들이다.

100여개 밖에 남지 않은 석불과 석탑이 이토록 흥미로운데 ‘천불천탑’이 주는 감동은 얼마나 신비로웠을까 싶다.

절집과 천불천탑의 기원은 미궁이다. 전설만 다양하다.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와 관련된 ‘풍수비보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신라의 땅은 배 모양인데, 배가 안정되려면 가운데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운주사 터가 이 중심, 그래서 도술을 부려 이 많은 석불과 탑을 이 땅에 세웠단다. 이야기 들을수록 결론은 없고 신비함만 커진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는 노비와 천민들이 신분해방운동을 벌이며 탑과 불상을 세웠다고 묘사 돼 있다.

이 많은 것들 중에 들머리 들판에 있는 구층석탑,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된 것이니 잊지 않고 구경한다. 중생을 구제할 미륵불이 세상에 오면 일어난다는 와불도 명물이니 알현한다. 10m 크기의 석불 두기가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있다. 장삼을 걸치고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얹었으며 얼굴은 웃고 있다. 대웅전 뒤 불사바위도 가 본다. 일주문부터 절집 가람들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 김삿갓의 방랑 멈추게 한 적벽

적벽도 수첩에 적어둔다.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의 적벽이 화순 땅에도 있다. 옹성산(572m) 서쪽 기슭, 이서면 장학리, 보산리, 창랑리 일대 약 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지금은 이서적벽(노루목적벽ㆍ화순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으로 구분돼 불린다. 이름은 정말로 중국 양쯔강의 그 적벽에서 따왔다. 기묘사화 때 동복(현재 화순의 일부)에 유배된 최산두(1483~1536)가 웅장한 풍광에 반해 이렇게 이름 붙였단다.

양쯔강의 적벽은 소동파의 애를 태웠다. 화순적벽은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적벽의 웅장함을 잊지 못한 그는 말년에 화순을 찾아 13년을 머물다 생을 마친다. 조선 중종 때의 개혁정치가 조광조(1482~1519)는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며 한을 달랬다. 적벽에 홀린 시인묵객들은 이외에도 허다하다. 일제시대에 적벽은 ‘조선 10경(景)’에 드는 경승지로 이름 날렸다.

네 개의 적벽군 가운데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물염적벽 앞에 있는 정자, 물염정을 찾아간다. 김삿갓이 수시로 올라 시를 읊었다는 정자다. 물길 너머로 적벽이 보인다. 정자 앞 벚나무 아래서 볕 받으며 게으름 부려본다. 여기서 창랑적벽도 가깝다. 도로 따라 창랑리 방향으로 가면 물길 너머 적벽이 나온다.

압권은 단연 이서적벽과 보산적벽이다. 높이가 최고 100m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는데 1970~80년대 동복댐이 생기면서 이 절반이 물에 잠겼단다. 그래도 맞닥뜨리면 입이 쩍 벌어진다. 동복호를 앞에 두고 수직으로 우뚝 솟은 기세가 정말 등등하다. 단풍 화려한 가을이 장관이라는데, 신록 어우러진 풍경도 제법 볼만하다. 붉은 때깔도 잘 드러난다. 망향정이 있는 곳이 보산적벽,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이 이서적벽이다. 망향정은 댐 생길 때 물에 잠긴 마을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다. 이거 들어앉은 위치도 절묘하다.

그런데 기억해 둘 것이 있다. 이서적벽과 보산적벽 일대는 광주광역시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설과 추석, 수몰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는 가을 무렵 한차례만 이들을 위해 개방된다. 그런데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등이 이서적벽과 보산적벽의 일부개방을 두고 한창 협의 중이라니 이를 자유롭게 둘러볼 날이 곧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이르면 내년쯤 될 거다. 그때를 위해 적어둔다. 기다려 찾아간 수고가 아깝지 않을 절경이다.

● 여행메모

△ 세량제에서 운주사로 갈 때 효산리와 대신리에 걸쳐 있는 고인돌유적지를 거쳐 갈 수 있으니 구경한다. 세계문화유산이다. 약 4km에 걸쳐 58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또 다른 고인돌 유적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의 고인돌보다 보존이 잘 돼 있고 고인돌과 함께 다양한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이 특징이라고 이곳 안내원이 소개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무게 290톤의 ‘핑메바위’ 고인돌, 50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는 관청바위 고인돌군은 꼭 찾아본다.

△ 도곡면의 색동두부(061-375-5066)는 보쌈 등을 얇게 썬 두부에 싸 먹는 포두부보쌈이 유명하다. 검정콩, 파란콩, 노란콩을 이용해 만든 세 가지 색깔의 색동두부도 고소하고 담백하다. 포두부보쌈 2만5,000~3만5,000원, 색동두부 3,000~5,000원, 순두부 7,000원.

△ 북면에 화순온천 지역에 금호리조트가 있다. 이 리조트가 운영하는 온천시설은 9,000원이다. 도곡면에도 도곡온천이 있다. 일대에 모텔이 많다.

△ 이서적벽과 보산적벽 관련 문의는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용연사업소(062-609-6122)로 하면 된다.

화순=글ㆍ사진 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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