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내 공식 출시된 BMW '미니(MINI)' 3세대 모델은 더 이상 '미니'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힘과 연비도 크게 개선됐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이었는데, 사양이 좀 빠졌다고는 하지만 기존 2세대 모델(쿠퍼 기본형 3,530만원)보다 20% 가까이 싸진 2,990만원으로 책정됐다.
이런 일은 작년 폴크스바겐의 7세대 골프 출시 때도 있었다. 동력 성능을 향상시킨 상황에서 다중충돌방지시스템, 멀티펑션 디스플레이, 드라이빙 프로파일 셀렉션 등 고급 모델에 들어가던 사양들을 적용하고도 가격은 3,040만원(1.6 TDI 블루모션)으로 기존 6세대보다 70만원을 끌어내렸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해진 걸까. 열쇠는 차를 만드는 방식에 있었다.
이른바 '모듈 킷 구조'(Modular Kit Architecture) 생산방식. 자동차 개발비와 생산비를 줄이기 위한 방식인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이제 그 결과물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모듈 킷 생산방식은 모든 차량에 단일 플랫폼을 적용하는 생산방식이다. 종래엔 동급차량만 같은 플랫폼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모듈 킷 구조에선 전 차종을 망라한다. 현대차에 비유하자면, 준중형 세단 아반떼를 생산하는 플랫폼을 해치백 모델인 i30, 기아차의 K3 등 동급차량 생산에 활용하는 게 지금까지의 방식. 하지만 모듈 킷 제작방식에서는 한 플랫폼으로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는 물론 액센트, 모닝까지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듈 킷의 원리는 '레고식 조립'이다. 엔진, 변속기 등 각 기능을 하는 뭉치(모듈)들을 표준화해 레고 블록 조립하듯 어디에든 얹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차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줄인다는 이야기다. 양희준 BS투자증권 연구원 "지금까지는 1개 모델 개발에 최소 3,000억원 이상의 비용과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소품종 대량생산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듈 킷은 플랫폼 제작비용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많은 모델을 신속히 생산할 수 있다는 건 자동차 경쟁에선 승리방정식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모듈 킷 생산 방식 도입을 위한 글로벌 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선두 업체는 독일의 폴크스바겐. 아우디 브랜드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작년에 이 같은 생산방식을 일부 적용, 7세대 골프와 A3 세단 모델을 내놨다.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단일 플랫폼에다 모듈 킷 방식으로 생산해 가격은 올리지 않고도 더 고급사양의 옵션들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에 따르면 종전 30대 수준인 시간당 생산대수(UPH)는 새 생산방식이 정착되면 최대 60대까지 확대된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UHP는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30~40대 수준이다. 양 연구원은 "폴크스바겐은 벌어들인 모든 돈을 생산방식전환에 쏟아 붓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도 BMW 113개, 미니 31개의 모델을 갖고 있는 BMW그룹은 모듈 킷 생산 전략을 확대해 오는 2020년까지 모델 종류 수를 3배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아직까지 플랫폼 공유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02년 22개 플랫폼에서 28개 모델을 생산했지만 지난해엔 6개 플랫폼에서 40개 모델을 생산했다. 제품 개발기간도 같은 40개월에서 작년 19개월로 단축했다"며 "플랫폼 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부품사들과 수직계열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다른 요소를 빼고 오직 효율성만 놓고 보면 독일업체들의 생산방식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본다. 국내 업체들도 보다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